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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상절 제 23·24 연구

저자 김영배 지음
출판년월 2009-05
ISBN ISBN-13 : 978-89-7801-246-1 93880
판형 46배판
페이지수 560쪽
판매가 3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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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청주시 용화사(龍華寺) 벽산당(碧山堂) 영주(永周) 스님이 간직해오던 『석보상절』 제23ㆍ24권이 세간에 알려진 것은 1966년이다. 이는 종래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권6’과 ‘권13’의 서뇌(書腦)에 쓰여 있던 ‘공이십사(共卄四)’의 기록에 근거해서 추정하던 『석보상절』 마지막 권의 실재를 확인시켜 준 것이다. 이 책은 보물 제523-2호로 지정되었고 현재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석보상절』은 총 24권 중 현재 10권만이 전해지는데, 그 중 제23ㆍ24권은 마지막 부분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 정황을 상세히 보여 주고 있어 『석보상절』 전편을 통틀어 내용상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석보상절』은 15세기 국어 입말[口語]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15세기의 국어 자료가 대부분 불경을 언해한 것인데, 이들은 한문 번역 투로 기록되어 있고 한자 어휘의 대부분을 고유어로 옮기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국어의 실제 모습이 어떠했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이에 비하여 『석보상절』은 번역 투의 문체를 과감히 버리고, 실제 국어의 모습을 생생하게 반영하고 있다. 더구나 대화체로 기록된 부분이 많기 때문에 당시 국어의 통사(統辭) 구조를 보여 주는 자료로서 이 책의 가치는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37년 전에 『석보상절 제23·24 주해』(1972)를 간행한 바 있으며, 평생을 중세국어 연구에 전념했다. 그러나 첫 주해서 이후에 축적된 국어학의 연구 성과를 반영한 개정증보 작업을 못한 채 옛 책이 아직도 읽히고 있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던 중, 2008년에 제6회 일석국어학상 수상을 계기로 완결된 주해연구서를 내기로 발심하게 되었다.

    이 책은 『석보상절』 제23·24권에 수록된 희귀어를 비롯해 다양한 언어 현상에 대한 국어학적 해설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목마다 저경(底經)의 내용과 대비하고 있어서 번역의 방법이나 태도를 확인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하다. 첫 책에 비해 주석 내용을 크게 고치고, 해제와 연구논문을 수록했으며, 동국대학교 소장 원본의 원색 영인본을 덧붙이게 되면서 내용과 구성 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책이 되었다.

    책 속으로

    ……여덟 왕께 이르되, “우리들도 사리를 덜어 주소서. 주시지 않으면 힘으로 가히 하겠습니다(싸우겠습니다).” 하더니, 그 때에 우바길이 또 이르되, “다투면 모름지기 이기지 못할 이가 있으니, 그러면 여래의 사리가 무엇이 이익되시겠소.” 하고 즉시 세 몫에 나누어 한 몫일랑 제천께 주고, 한 몫일랑 용왕께 주고 한 몫일랑 여덟 왕께 고루 나누니까, 모두 기뻐하여 각각의 금담에 담았다(담아 돌아갔다). 아사세왕이 사리를 모아 세니, 각각 8만 4천이시었다. 

    제천은 하늘에 모셔다가 칠보탑을 세우고, 용왕은 용궁에 모셔다가 칠보탑을 세우고, 여덟 왕은 각각 (제) 나라에 모셔다가 칠보탑을 세우니, 우바길은 사리를 되던 독 안에 가만히 꿀을 바르니(발랐더니), 거기에 달라붙은 사리를 모셔다가 독채로 칠보탑을 세웠다.……

    ……예전에 부처님이 아난을 데리시고 사위성에 드시어 탁발하시더니, 길 가에 작은(어린) 아이들이 흙을 모아 집을 만들어 두고서 둘러앉아 놀다가 한 어린이 야사라 하는 애가 부처님 오시거늘 보고 찬양하여 자기의 광에 쌀이라 하여 두었던 흙을 움켜서 부처님께 바치려 하니, 키가 작으므로 친구인 비사야가 부처님 앞에 구부리거늘, 야사가 비사야의 어깨에 올라 부처님께 바치니, 부처님이 굽으시어 바리로 받으시거늘 비사야가 합장하여 따라서 기뻐했다. 그 때에 야사가 발원하여 여쭈되, “오늘 보시한 선근 공덕으로 후생에는 한 천하(나라)를 얻어 산개를 받치는 왕이 되어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싶습니다.”세존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미소 지으시거늘 아난이 합장하여 여쭈되,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미소하시는 것입니까?” (하니,) 세존께서 이르시되, “ 내가 멸도한 1백 년 후에 이 동자가 파련불읍에 태어나서 한 나라를 (맡아) 가지고 전륜왕이 되어, 성은 공작이고 이름은 아육이라 하고, 이 다음가는 동자는 그 나라의 대신이 되어 둘이 염부제를 가지고 삼보를 공양하며 정법으로 다스리며, 내 사리로 8만 4천의 탑을 세우리라.……

    ……『석보상절』은, 중국 남제(南齊)의 승우(僧祐, 444 ∼ 518)와 당(唐)의 도선(道宣, 596 ∼ 667) 두 스님이 각각 지은 『석가보(釋迦譜)』와 『석가씨보(釋迦氏譜)』에서 가려 뽑고, 여기에 『법화경(法華經)』을 비롯한 여러 경전을 더하여 우리나라 나름대로 엮은 『증수석가보(增修釋迦譜)』(?)를 당시 새로 만든 훈민정음(訓民正音)으로 번역해 낸 최초의 산문체 문학작품이다. 수양대군이 주재(主宰)하고 안평대군과 신미(信眉) 스님, 승문원(承文院) 교리(校理) 김수온(金守溫) 등의 도움을 받아 편찬하였다. 

     

    이 ‘제23·24’(이하 이렇게 칭하기로 함)가 나타남에 따라서 『석보상절』의 총 권수(卷數)가 24권이라는 것을 입증하게 되었다. 곧, 종래에는 국립도서관 소장의 ‘권6’과 ‘권13’의 아랫마구리—정확하게는 서뇌(書腦) 아랫부분 셋째 칸에 쓰여 있던 ‘공 이십사[共卄四]’에 의해서 권수를 추정했던 것인데‘, 제24’로 해서 제대로 인증하게 되었다.……

    ……『석보상절』 ‘제23, 24’가 학계에 공개되기 전까지는 『석보상절』이 동시대의 다른 어느 문헌보다도 『훈민정음』 ‘해례’의 8종성 규정에 충실하다고 보았다. 곧 『용비어천가』나 『월인천강지곡』처럼 ‘ㅈ, ㅊ, ㅍ, ㅌ’ 종성이나 ‘ㄴ, ㅁ, ㄹ, ㅿ’ 등 어간말자음의 특이한 표기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식하게 된 것은 그 전에 전래된 나머지 권차(卷次)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23, 24’에는 ‘ㅿ’ 종성도 쓰이고 ‘ ‐ㅇ’식 표기도 쓰였다.……

    ……김영배(1974)는 권차(卷次)와 내용이 같은 『석보상절』 제9와 『월인석보』 제9를 대비하여, 번역 경향, 한자어의 사용, 상당한 양의 협주 추가 등을 통해 두 문헌은 전연 별개의 문헌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위와 같은 결과는 『석보상절』 제19와 같은 내용이 실려 있는 『월인석보』 제17, 18과 『법화경언해』 권6의 비교에 있어도 대체로 마찬가지였다(김영배 : 1975). 김영배(2004 : 10)에서는 석보상절의 중간 부분이 중단된 채(월석 20 : 29a2) 다음에 『월인천강지곡』 기347, 기348(쌍행 협주)이 동 기349, 기350(쌍행 협주)과 동 기406 ∼ 기411이 끝난(월석 20 : 93b6) 다음에, 장차로는 63장 정도를 건너뛰어서 중단됐던 상절 부분이 시작됨을 보였는데, 현전하는 『월인석보』 중에 이렇게 문장 중간을 끊고 새로운 부분을 삽입한 것은 달리 보이지 않음을 지적했다.……

    ……『월인석보 제25』의 『석보상절』 부분은 전체적으로 『석보상절 제24』를 바탕으로 상당 부분 고쳐 쓰면서 새로 추가하기도(약 181면) 하고 일부분은 삭제하기도(약 10면) 하는 등 대폭 증보되었다. 새로 추가된 것 가운데서, 율장에 관련된 ‘삼의육물(三衣六物)’은 그 주석과 법복의 공덕, 등을 자세하게 설명했는데, 그 분량이 43장이나 되며, 아육왕의 8만 4천 탑에 관한 내용은 『석보상절 제24』에서도 상당한 분량이었지만, 『월인석보 제25』에서는 약 80장을 차지한 것 등이 특기할 만한 점이다.……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은 애초에 따로 간행은 되었으나, 그 내용의 성질상 조만간 합편될 운명(?)을 타고 제작되었다고 하겠다. 수양대군이 등극하기 전후의 엄청난 비극적인 사건은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계유정난(癸酉靖難)(1453, 단종 1년 10월)으로 반대 세력을 제거하여 왕권 접수의 발판을 삼고, 단종 3년 윤6월(1455)에 즉위하며, 이듬해(1456) 6월에 사육신(死六臣)의 처결 및 단종의 영월 유배, 동 10월 금성대군(錦城大君)의 사사(賜死)와 급기야 단종[노산군]이 자액(自縊)함으로써 일단락되었으나, 이 와중에 왕세자 도원군(桃源君)이 요절하는 역리지통(逆理之痛)을 겪기도 하였다. 이런 일련의 비극으로 세조의 인간적인 번민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이고, 그 자신 독실한 불교 신자였으므로 참회와 속죄의 감정 또한 말할 수 없이 더 했을 것이다. ‘위로 부모 선가(仙駕)를 위하고 아울러 망아(亡兒)를 위하는 일’(월인석보서)에 자신의 심경을 투사(投射)할 방도를 고려하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이 『월인석보』의 편찬을 아육왕이 8만 4천 탑을 조성하는 일에 견주면서 그 나름대로의 위안을 삼으려 했다고 보는 것은 필자의 지나친 생각일까? 나아가 세조 11년(1465) 4월, 원각사와 그 10층탑의 건립도 맥락을 같이할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 목차
    머리말

    주해편
    일러두기
    석보상절 제23 원문 | 저경 | 현대역 | 주해
    석보상절 제24 원문 | 저경 | 현대역 | 주해
    찾아보기

    연구편
    I. 문헌 개관 및 어학적 고찰
    II. 『석보상절 제24』와 『월인석보 제25』의 대비 연구

    부 록 : 영인본
    석보상절 제23 영인
    석보상절 제24 영인
  • 저자소개
    지은이 김영배

    약력
    1931년 평안북도 영변군 출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박사과정 수료, 문학박사
    부산여자대학(현 신라대학교) 조교수 역임
    상명여자사범대학(현 상명대학교) 조교수 역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역임
    일본 쓰쿠바(筑波)대학 비교문화학류 외국인교사 역임
    현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상훈
    국민훈장 모란장(1997)
    일석국어학상(一石國語學賞)(2008)

    대표 논저
    『석보상절 제23·24 주해』, 일조각, 1972.
    『평안방언의 음운체계 연구』,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1977.
    『평안방언연구』, 동국대학교출판부, 1984.
    『역주 석보상절 제6·9·11』(공동),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91.
    『남북한의 방언 연구』(편저), 경운출판사, 1992.
    『증보 평안방언연구』, 태학사, 1997.
    『평안방언연구 자료편』, 태학사, 1997.
    『국어사 자료 연구』, 월인, 2000.
    『역주 월인석보 제2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4.
    『역주 금강경삼가해 제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6.
    『역주 금강경삼가해 제2』,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