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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도량참법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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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자비도량참법집해慈悲道場懺法集解��는 ��자비도량참법慈悲道場懺法��에 관한 현존 유일의 주석서이다. 이 책은 조선 초에 국사를 지낸 조구祖丘가 온릉溫陵 사문 변진辨眞의 찬주, 청량산淸凉山 광균廣鈞의 사초私鈔 3권, 오파새가烏婆塞迦 각명覺明의 주석, 고려 자은종慈恩宗 국일 미수國一彌授 대사의 술해述解, 동림東林 선사의 약해略解 등 5종의 기존 주석서들을 면밀히 검토해 요약 정리하고, 수많은 경론과 전적에 의거해 글자의 음의音義에서부터 법수法數의 해설, 나아가 문장의 해석 순서와 문장의 대의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를 면밀히 고증하고 해설한 역작이다.
우리는 조구의 해설을 통해 조구 개인의 탁월한 학문적 역량뿐 아니라 고려 말, 조선 초의 불교학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고, 참회법懺悔法이 감성에 호소하는 방편문方便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원무친無怨無親의 열반涅槃으로 곧장 들어가는 대승의 직절문直截門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자비도량참법��이 탄탄한 교학의 토대 위에서 편찬된 책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고려 말 충선왕으로부터 국존國尊으로 숭상되었던 법상종法相宗의 대덕 국일 미수(1240~1327) 대사가 해설하고, 조선 태조 때 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과 국사를 지낸 천태종의 조구가 강해했던 것으로 보아 여말선초에 ��자비도량참법��이 종파에 상관없이 크게 유행하였고, 그 중심에 왕권의 후원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란과 분쟁으로 인한 살육이 끊이지 않았던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집권세력이 정권투쟁의 희생자들과 그 잔여세력들을 포용하고 통합하는 방안으로 참회懺悔와 발원發願이라는 불교적 방식을 선택했던 점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현존 ��자비도량참법집해��는 목판의 인본印本이지만 그 조판의 형식이나 글자의 모양 및 크기 등이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 도서인 ��직지直指��의 ‘흥덕사자興德寺字’와 일치한다. 따라서 금속활자본을 목판으로 번각飜刻한 것으로 추정되어 서지학적으로도 소중한 자료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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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글본 한국불교전서를 펴내며
자비도량참법집해 해제
일러두기
권상卷上
서문
상교정본 다비도향참법 서詳校正本慈悲道懺法序
서문의 음의
(제1주)
제1권
제1. 삼보에 귀의함
제2. 의심을 끊음
제3. 참회
제2권
제4. 보리심을 일으킴
제5. 원을 세움
제6. 회향하는 마음을 일으킴
(제2주)
제3권
제1. 과보를 드러냄
권하卷下
제4권
제1. 과보를 드러냄
제2. 지옥을 벗어남
제5권
제3. 맺힌 원한을 풂
제4. 발원
(제3주)
제7권
제1. 스스로 축하함
제2. 육도를 위한 예불
제8권
제9권
제3. 회향
제10권
제4. 발원
제5. 촉루
발문
시주질施主秩
발문
옮긴이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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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 조구
조구祖丘는 천태종天台宗 승려로서 고려 말엽인 1310년대 후반에서 1320년 초기 사이에 담양潭陽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태조 원년(1392)에 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에 올랐고, 태조 3년(1394년)에 국사國師로 책봉되었으며, 다음 해인 태조 4년(1395)에 입적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4년 을해(1395) 1월 27일(임술)> 기사에 “담양현潭陽縣을 군郡으로 승격하였으니, 국사 조구의 고향인 까닭이었다.”고 하고, <태조 4년 을해(1395) 11월 14일(갑술)> 기사에 “국사 조구가 병사하자 조회를 정지하게 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태조의 존망과 신임이 돈후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저서로 『자비도량참법집해』 상·하 2권이 전한다.
옮긴이 성재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해군군종법사를 역임하였으며, 동국대학교 역경원에서 근무하였다. 현재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번역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계종 간행 『부처님의 생애』, 『청소년불교입문』 집필위원으로 참여하였고, 저서로 『커피와 달마』, 『붓다를 만난 사람들』, 『육바라밀』이 있다.
증의 및 윤문
이성운(조계종 포교원 한글법요집 편찬연구위원)
이인혜(전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