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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표해록

저자 풍계 현정 지음, 김상현 옮김
출판년월 2010-06
ISBN ISBN-13 : 978-89-7801-270-6
판형 46판 양장
페이지수 180쪽
판매가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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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 ‘대마도가 조선땅’이라는 증언을 담은 19세기 조선 승려의 생생한 일본표류기

     1817년 11월 27일 한밤중에 일본 후쿠오카 인근 오시마(大島)에 동해상에서 큰 풍랑을 만나 표류하던 조선의 배 한 척이 도착했다. 불상 768위가 실린 그 배에는 승려 15인을 비롯해 27명의 조선인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조선관이 있는 나가사키(長崎)로 이송되어 4개월 정도를 머물렀고 대마도를 거쳐 이듬해 7월 14일에 원래 목적지였던 해남 앞바다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이러한 역사기록의 자세한 내용은 1821년에 능주綾州(전남 화순) 쌍봉사雙峰寺의 화원승畵員僧인 풍계 현정楓溪賢正이 쓴 『일본표해록』에 담겨 있다. 그는 해남 대둔사 천불전의 천불 조성을 담당했던 승려로서 경주에서 천불을 조성하여 장진포長津浦에서 배에 싣고 해남으로 출항한 이후에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일본에 도착하면서 겪은 일들을 생생하게 기록하였다. 그 내용은 가히 『하멜표류기』를 능가한다. 

     

    『일본표해록』은 표류와 송환 과정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겪었던 일과 당시 일본의 풍습, 일본인들의 조선에 대한 생각과 태도 등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표류민 처리 과정을 상세하게 적고 있어서 일본의 표류민 처리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조선왕조실록>이나 <비변사등록> 등 자료에 의하면 조선 후기에 조선의 표류민들이 일본에서 송환된 기록은 천 건이 넘는다. 그러나 표류민의 대부분은 어민으로서 문자를 알지 못해 거의 표류기를 남기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의 기록은 매우 중요한 역사자료로서 인정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구주 일대의 풍속과 사회상황과 일본의 군사․경제 및 대외 문호개방 정도, 그리고 일본인의 조선인식과 관련한 기록들도 연구자들에게 소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대둔사 천불전과 천불의 조성 배경 및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대둔사완호대사비명>이나 <천불조성약기>를 통해 대둔사 천불전에 대해 대강은 알 수 있지만 그 상세한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 자료는 『일본표해록』이 유일하다. 그러므로 대둔사 천불전의 유래를 밝히고 있는 자료로서 그 가치가 인정된다. 또한 이 책의 서문에서는 용허 석민聳虛碩旻이 개설한 것으로 알려져 왔던 건봉사 만일염불회와 관련하여 복인福仁이 발원하여 만일회가 성립되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어 학계의 새로운 논의자료로서 주목이 된다. 

     

    이외에도 비록 우연적인 교류이기는 하나, 불교인의 해외교류가 원활하지 못했던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해외체험을 통해 한 불교인의 대외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과, 장기간의 표류과정에도 신심을 잃지 않고 무사히 귀환하여 천불전을 완성한다는 이야기 자체가 종교적 감화력을 지닌 영험담으로 해석된다는 점도 이 문헌의 소중한 가치로 평가할 수 있다. 

  • 목차
    한글본 한국불교전서를 펴내며 / 4

    일본표해록日本漂海錄 해제 / 7

    <그림> 조선표객도 / 24

    일러두기 / 28


    일본표해록日本漂海錄 서문 / 30

    일본표해록日本漂海錄 / 37

    일본표해록 주 / 74

    일본표해록 원문 / 81

    참고 논문

    해남 대둔사 승려의 일본 표착과 체험(1817~1818년) / 107


    옮긴이의 말 / 174
    찾아보기 / 177
  • 저자소개

    -저자 소개

    풍계 현정 

    풍계 현정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 자세한 사실은 알 수 없다. 다만 『일본표해록』 말미에서 스스로 ‘능주綾州 쌍봉사雙峰寺의 승려’라고 하였으므로 쌍봉사 출신의 스님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밖에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이 쓴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 그에 대한 짤막한 기록이 있다. 

     

    화원승畵員僧으로 광주의 원효사元曉寺에 있었다. 해남 대둔사의 천불상千佛像을 경주의 석굴암에서 만든 지 여러 해 만에 일이 끝나서 배에 싣고 돌아오다가 풍랑을 만나서 일본의 장기도長崎島에 정박하게 되었다. 그런데 싣고 있던 천불상이 홀연히 광명을 나타내니 일본 사람들이 대단히 이상히 여기고 신앙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그대로 3년을 머물다가 돌아와서 표해록漂海錄을 지었다. 그 제자 해운이 또한 화원으로서 세상에 이름났다. 

     

    위의 기록으로 볼 때 현정은 당시에 화원으로 이름난 승려였던 것 같다. 대둔사에서 천불을 조성하면서 그에게 의뢰한 것에서 그의 명망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범해 각안梵海覺岸, 1820∼1896)이 쓴 <천불조성약기千佛造成略記>(『범해선사문집梵海禪師文集』, 『한국불교전서』 제10책)에서도 확인된다. <천불조성약기>에 의하면, 현정이 천불을 조성할 때 처음에 京山 화원 8명으로 일을 시작하였지만, 점안을 할 때는 경산 화원 9명, 영남嶺南 화원 24명, 전라도全羅道 화원 11명이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에 영남과 호남의 화원 수십 명을 동원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가진 화원승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역자 소개

     

     김상현(金相鉉) 

    경남 합천에서 태어남(1947). 경상대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단국대 및 한국교원대 교수와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동국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원효연구』, 『신라의 사상과 문화』, 『신라화엄사상연구』, 『역사로 읽는 원효』, 『한국불교사 산책』, 『한국의 차시』 등이 있고,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