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역경원의 初心을 생각하게 하는 책
이 책은 동국역경원이 창립된 지 2주년 되는 해(1966년)에 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한글대장경 독자들에게 좋은 경전을 선사하기로 하고 물색하여 선정되어 번역된 책이다.
이 책은, 지금은 다 고인이 되었지만 당시 국학國學의 대가로 칭송받던 조지훈 시인과 서구에서 불교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이기영 박사, 그리고 법정 스님께서 각각 나누어 번역하고, 다시 역경위원들의 검토를 거쳐서 간행되었다. 이 책은 당시 한글 번역의 전범典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세련된 우리말로 다듬어져 있어 역경사들이 경을 번역할 때 참고해야 할 표본으로 제시되기도 했으며, 반세기 전에 번역한 글이 지금 다시 봐도 훌륭한 우리말 문장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 책을 지금 다시 출간하는 뜻은, 초창기 역경원에서 펼친 역경사업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고, 그 일에 종사했던 분들의 신심과 원력이 얼마나 컸으며, 이 일의 원만한 성취를 위해 우리 불교계에서 얼마나 큰 힘을 기울였던가를 살펴봄으로써 역경사업에 새로운 활로가 열렸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다. 세 분의 뜻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될 수 있으면 그때 그 문장 그대로 출간하도록 노력하였으며, 다만 요즘 쓰지 않아 뜻을 알기 어려운 단어는 현대어로 바꾸었고, 오자와 탈자를 바로잡았으며, 현행 한글맞춤법에 따른 수정만 가하였다. 그리고 독자의 편의를 위하여 따로 독송본을 만들어서 뒷부분에 첨가하였다.
보현행원품ㆍ보문품ㆍ보안장은 어떤 책인가?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은, 화엄사상華嚴思想의 절정絶頂을 이루고 있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 해당하는 ‘40화엄경’ 안에 들어 있는 법문이다.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에 의해 보리심을 내어 53선지식善知識을 차례로 만나 도道를 묻고, 그 도를 구하는 여정旅程의 마지막에 보현보살을 만나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보현보살은, 부처님의 공덕은 가히 말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열 가지 행원을 닦아야 한다고 했다. 곧, 모든 부처님을 예배 공경하고, 부처님을 우러러 찬탄하고, 널리 공양하고, 스스로의 업장을 참회하고, 남의 공덕을 따라 기뻐하고, 설법하여 주기를 청하고,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래 머무르시기를 청하고,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고, 항상 중생을 따르고, 모두 다 회향하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열 가지 행원은 모든 구도자의 도정道程이기도 하거니와, 동체대비同體大悲의 화엄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문품普門品」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중에서 관세음보살에 대하여 설한 장章의 이름으로서 정확히는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이다. 관세음보살이 법계에 널리 있는 문을 열어 묘용妙用으로써 중생을 제도하시려고 설한 것으로서 「관음경觀音經」이라고도 한다.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大慈大悲의 화현으로서, 일체 중생의 음성을 듣고 고통에서 구제하여 안락을 주기 위하여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서른두 종류의 응신應身을 나타내어 법문을 말하여 제도하고, 열네 가지 두려움이 없는 힘으로써 험난한 처지에 빠진 중생들을 구제하는 일을 기록한 책이다.
「보안장普眼章」은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가운데 들어 있는 한 부분이다. 흔히 ��원각경��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이다. 이 경은 부처님께서 문수文殊ㆍ보현普賢 등 열두 보살의 질문에 대해 시방세계에 두루 가득하여 생멸이 없는 원각묘심圓覺妙心과 이 묘심에 증입證入하는 수행법에 대하여 말씀하신 법문이다. 이 중 「보안장」은 ��원각경�� 12장 가운데 그 안목眼目이라고 할 수 있다. 문수와 보현의 뒤를 이어 세 번째로 보안보살이 부처님께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머무르며, 깨치지 못한 중생들은 어떤 방편을 써야만 깨칠 수 있는지 등 보살이 수행할 차례(修行漸次)를 묻는데, 이 질문이야말로 모든 수행자들의 공통적인 간절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청정한 원각심圓覺心을 구하려면 생각을 바르게 하여 모든 환幻을 멀리 여의어야 한다면서, 우선 계율을 지키고, 고요한 곳에 앉아 ‘이 몸뚱이는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 4대大가 화합하여 된 것이고, 마음이라는 것도 경계에 인연해서 일어나는 허망한 것’이라는 관觀을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일체 실상의 성품은 청정한 것이기 때문에 일신一身ㆍ다신多身, 일세계一世界ㆍ다세계多世界가 다 청정하고 평등부동平等不動이다. 중생이 본래 부처이고, 생사와 열반이 지난 밤 꿈과 같은 것이므로 생사와 열반이 일어나는 것도 없고, 멸하는 것도 없으며,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다. 모든 보살이 이렇게 닦아 나아가면 결코 미민迷悶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지으면서 게송으로 거듭 전체의 뜻을 말했다. 이런 의미의 내용을 지닌 「보안장」은 종래부터 불자들이 많이 수지 독송해 오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