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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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 파피-리터레쳐, 새로운 문학 장르
이런 문학도 있다. 한없이 작고 사소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 같기도 하고 수필 같기도 하다. 아무렴 어떠랴. 한없이 작고 사소한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따뜻한지를 실감나게 보여주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문학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어떻게 하면 개를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개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정년을 앞둔 대학의 문학교수가 갑자기 애견가가 된 사연 속에는 우리들 삶에 대한 놀라운 성찰들이 풍성하다. 수많은 애견가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어서 좋다. 개가 본격적으로 문학적 사색과 성찰의 대상이 된 셈이다. 파피-리터레쳐(puppy-literature)가 탄생했다.
이 책은 애완견에 대해 관심도 없고, 더구나 애완견을 기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저자가 어느 날 찾아온 뜻밖의 방문객으로 인한 생활의 변화를 섬세한 필치로 보여준다. 저자는 그 과정을 이렇게 술회한다.
……누니와 함께 산 지 2년이 되었다. 누니가 처음 우리집에 왔을 때까지만 해도 누런 털을 가진 강아지 한 마리가 내 삶에서 그처럼 소중한 존재로 자리 잡게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었다. 누니를 생각하면 언제나 내 입가엔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대상이 분명치 않은 감사의 마음에 사로잡히게 된다. 아마도 누니를 ‘있게’ 하고 누니를 내게 보내준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일 것이다. <책머리에> 중에서
작고 보잘것없는 한 생명을 사랑하게 되는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드러난다. 강아지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모든 것’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고백은 얼마나 울림이 큰가. 강아지 기르는 경험이 어째서 아름답고 감동적인 문학이 되는가를 즐겁게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누니는, 추운 겨울 가슴을 따뜻하게 열어 주는 아름다운 선물이다.
2. 가족이 함께 만든 책
이 책은 또 다른 의미에서 가족문학이다. 주인공은 강아지 누니다. 저자에게는 자식 같고 손자 같다. 저자의 부인과 딸도 파피 리터레쳐 탄생 과정에 함께 참여했다.
누니에 대한 올칼라의 섬세한 스케치는 딸이 맡았다. 풍부하고 다양한 누니의 표정 속에는 생명의 경이가 찬연하게 드러난다. 단순한 모사(模寫)나 재현이 아니다. 사랑과 헌신이 없이는 안 되는 작업이다. 그림 자체가 누니에 대한 사랑의 해석이고 탁월한 텍스트인 셈이다.
누니와 함께하는 생활의 배후들을 가볍고 소박한 수채화로 표현하는 것은 부인의 몫이다. 이 그림들 역시 누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화가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누니를 통한 <생활의 발견>이라고 불러도 좋다. 누니와 함께 산책하는 동안의 거리의 풍경들이며 하늘의 색조들은 강아지 한 마리를 통해 새롭게 발견하는 세상의 또 다른 모습들이다. 즐거움과 애정과 경이가 이 수채화들 속에 스며 있다.
이렇게 해서 이 책은 한 가족이 얼마나 열렬하게 강아지를 사랑하는지를 글과 그림을 통해서 보여주게 되는 진기한 기록을 가지게 된다.
3. 책 속으로
그날은 첫눈이 오는 날이었고 첫눈과 더불어 찾아온 새 가족에게 우리는 눈[雪]이 - 누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누니가 우리 가족이 되는 과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비좁은 아파트엔 새로운 가족을 위한 여유 공간이 없었다. 하물며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딸애는 선뜻 누니를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올 수 없었던 것이리라. (본문 11쪽)
누니는 우리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우리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까마득히 먼 어느 곳에 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느닷없이 우리 사이에 드리워진 이 까마득한 거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혹시 그것은 우리와 누니가 각기 속한 종의 차이가 드리운 장벽일까. 모로 누운 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누니의 눈을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날 나는 깊은 충격에 빠졌다. 불이 꺼진 누니의 눈에 깃들여 있는 것이 무엇일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본문 46쪽)
정말로 누니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누니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그랬으면 좋겠다. 누니가 행복해지는 걸 보는 일은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누니뿐만 아니라 모든 개들, 모든 동물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인간만이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오만이고 독선이다. 내가 이런 생각에 미칠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누니 덕분이다. 누니가 나를 변화시킨 것이다. 나는 이 변화를 고맙게 받아들일 작정이다. (본문 87쪽)
가만히 생각해 보니 누니를 보살피기 위해 수고하고 누니를 즐겁게 하기 위해 시간을 쓰는 일이 나에게 헛되고 허망하다는 느낌을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반대로 누니 하나를 건강하게 보살피면 내 모든 실패가 만회될 것 같았고 누니 하나를 행복하게 해 주면 내 모든 죄와 허물이 용서될 것 같았다. 그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느낌이고 도무지 조리도 없는 생각이었지만 내 의식의 밑바탕에서 어느 샌가 싹터 오르고 있었던 느낌이고 생각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본문 139쪽)
“형님께 용서를 빌 일은 그뿐만이 아니에요. 저는 내내 누니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제 등 뒤에서 울부짖던 누니를 떠올리면 마음이 조급해지곤 했어요. 세상에, 형님과 영영 이별하는 마당에 그깟 강아지 일로 마음을 쓰고 있었다니. 형 죄송해요, 형님. (중략) 무엇보다도 누니는 그깟 강아지가 아니에요. 외출에서 돌아온 저희를 반기는 누니의 모습을 한 번만 보셨더라면 누니가, 그깟 강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이 세상에서 오직 저희만 믿고 저희에게만 의지해서 살아가는 불쌍한 누니예요. 저희 말고는 이 세상에 누니를 보살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누니를 생각하면 형님…….” (본문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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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첫눈 오던 날 | 9
2 어떤 애견가 이야기 | 21
3 누니와 텔레비전 | 37
4 하롱베이의 치와와 가족 | 53
5 누니가 아프다 | 73
6 애정 서열 3번 | 92
7 왜 사냐고? | 121
8 해피 버스데이 투유 | 144
9 이다음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162
10 저녁 산책 | 191 -
저자소개
이십대 중반부터 사십대 초반까지 소설을 썼으며 「조철 씨의 어떤 행복한 아침」, 「또 다른 나라」 등 두세 권의 단편집과 장편소설 「싼타루치아 역에서 돌아보다」를 냈다. 1985년 「호밀밭」으로 제5회 소설문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2000년 여름 동학제자들과 서사학 전문 연구저널 ‘내러티브’를 창간했으며, 현재 동국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야기와 담론」,「영화와 소설의 수사학」,「서사란 무엇인가」,「싸이버 서사의 미래」 등의 서사 이론서들을 번역했고 「서사의 이론과 그 쟁점들」, 「한국 소설론의 반성」, 「이광수 소설의 비판과 옹호」, 「소설학 사전」, 「소설의 이해」, 「소설을 찾아서」 등의 저서가 있다. 근래엔 애견과 양재천을 산책하며 누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화를 한 편 구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