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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 왕조사 탐색

저자 김영태 지음
출판년월 2013-04-20
ISBN ISBN-13 : 978-89-7801-378-9 (93910)
판형 신국판
페이지수 324쪽
판매가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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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삼국유사주의를 그리는 노교수가 역사의 바다에서 길어 올린 우리 고대 왕조사의 진실! 

     

    역사의 진실을 밝혀내는 작업은 외롭고도 고단한 수행과 다를 바 없다. 역사 기록이란 게 늘 충분치 않을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기록이 있더라도 사서史書들 사이에 내용이 서로 다를 경우 이를 추론하고 증명하여 진실을 규명해내는 일은 뛰어난 사학자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면에서 다가가는 일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우리 고대 왕조사의 진실을 탐색하는 작업에 천착해 온 김영태 동국대 명예교수의 『한국 고대 왕조사 탐색 - 삼국유사주의를 그리며』(동국대출판부 刊)의 출간은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 책의 저술 동기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칠백수십 년 전에 일연一然 보각국로普覺國老(1206~1289년)는 역사의 뒷골목에 묻혀 잊혀 있던 상고上古 이래의 가마득한 우리 민족사 이야기, 이른바 기이紀異의 유문일사遺聞逸事들을 손에 닿는 대로 수집 찬술하여, 그 편차를 불가佛家 고사집故事集의 앞자리에 놓이게 하였다. 당시 10여 업종業宗이던 고려 불교계에서 국사國師 선로禪老가 심혈을 기울여 엮어 놓은 『삼국유사』의 찬집撰輯 정신을, 나는 진작 ‘삼국유사주의’라고 명명하였다. 지금 이 작은 책도 그 ‘삼국유사주의’의 본을 받아서 엮어본 것이다. 

     

    필자에 따르면, 중국 정사正史의 비롯이라는 『사기史記』와 그에 이은 『한서漢書』에서는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다.(封箕子於朝鮮)”라고 하였으면서도 정작 열전列傳을 두고 다룬 ‘조선전朝鮮傳’에서는 국가로서의 ‘기자조선箕子朝鮮’은 기록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이들 ‘조선전’에서는 ‘조선 왕 위만衛滿’을 연나라 사람(燕人)이라 하면서도, 실제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위만의 모습에서는 조선 사람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송서宋書』와 『위서魏書』 이래로 수록되어 온 ‘백제전百濟傳’에는 그 건국 및 시조에 관한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다가 『주서周書』·『수서隋書』 등에서 비로소 백제 시조의 이름이 보이고 있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백제 건국 시조는 ‘구이仇台’이며, 우리의 역사 상식이 되어 있는 백제 시조 온조溫祚왕의 이름은 중국 왕조사에서는 끝까지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또한 『수서』 ‘왜국전倭國傳’에는, “일찍이 문자가 없어서 나무에 금을 긋고 끈을 매듭지어 기록을 대신했을 뿐(無文字唯刻木結繩)”이던 왜국(日本)이 “백제로부터 불경을 전해 받고 비로소 문자를 쓸 수 있게 되었다.(於百濟求得佛經 始有文字)”라고 하였는데, 이는 ‘문자가 훨씬 먼저 전해지고 불교는 나중에 따로 전해졌다’는 일본日本 국내의 현존 사전史傳과는 정반대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중국 역사서의 기록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에서 다루고 있는 우리의 옛 왕국 역사와 상당한 괴리가 있다. 그리하여 필자는 이상과 같은 문제들을 따로 모아 정리하고 나름대로 탐색해 보고 있는 것이다. 네 가름(4부)으로 구성된 이 책 『한국 고대 왕조사 탐색-삼국유사주의를 그리며』는 첫째 가름에서 기자․위만 조선과 마한전의 문제를 다루고, 둘째 가름에서는 고구려사 문제를, 셋째 가름에서는 백제사 문제를, 그리고 넷째 가름에서는 신라 및 발해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필자는 가급적 자세히 고증하여 쉽게 살펴볼 생각이었으나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노라고 토로한다. 독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 많은 중국 역사서들에서 우리나라의 고대 왕조와 관련된 부분을 찾아내고 해석해 우리 사서와 일일이 비교한 뒤 상이점을 밝히고 어느 쪽이 옳은가를 판단하고 논술하는 일이 그리 간단한 문제로 보이진 않는다. 더구나 글자 한 자라도 놓치거나 잘못 해석하면 일을 그르칠 수밖에 없는 엄밀성을 요하는 일이 아닌가. 

    아무튼 불굴의 정신으로 중국과 한국의 역사서를 책이 해지도록 보고 또 보았을 필자의 노력 덕분에 우리 독자들은 한국 고대 왕조사의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 10여 가지를 풀 수 있게 되었다.

     

     책 속으로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세웠다는 우리 민족 최초의 왕국인 이른바 ‘고조선古朝鮮’은 그때(은·주 시대)에 중국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중국의 고사古史에서도 이른바 ‘단군조선’이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심지어는 『사기』에서도 그러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가 느닷없이 오직 ‘송미자세가’에서만 불쑥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다.”고 하였다. 당시 조선국에는 당연히 그 나라 임금이 있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을 텐데, 또 누가 누구를 마음대로 조선후侯나 국왕에 임명한다는 것인가. 

    ― 24쪽, 『사기』와 『한서』의 조선전에는 기자조선이 없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주로 중국의 옛 왕조사에는, 동명 이야기는 ‘부여夫餘의 왕이 된 동명의 출생 및 건국 설화’이고, 주몽의 출생 및 건국 이야기는 ‘고구려의 시조 설화’로 분명하게 나뉘어 있다. 곧 우리의 역사에 있어서 고구려의 개국시조 ‘동명왕 주몽’이라는 한 인물을 ‘부여의 건국자 동명’과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두 사람 이야기로 나누어 따로따로 적어 놓았다는 것이다. 

    ― 108쪽, 고구려 시조 설화의 문제점 

     

    고구려의 역대 왕(시조 제외) 중에서 유독 제16대 왕에게 소열제라 하여 왕명에 ‘제’ 자를 붙이는 것은 역사 상식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시조 왕을 비롯한 고구려 역대 왕들에게 주몽·여달·여율·막래·궁 등이라 하여 왕의 호칭도 없이 달랑 이름만을 적어 왔던 중국의 왕조사 가운데 『수서』에서 느닷없이 ‘소열제’라는 왕명 아닌 제명帝名이 돌출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이 황당한 두찬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182쪽, 『수서』에 보인 고구려 왕 소열제 

     

    어떤 이들은 요서의 백제군에 관한 기록이 그 지역에 관련되는 북조의 사전史傳에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남조 계통의 왕조사에만 전해지고 있다는 점과, 그 시기를 ‘진의 때’라고 하였는데 정작 『진서晋書』에는 그러한 기록이 없다는 점, 또 진평군 진평현이나 백제군의 지명이 중국의 다른 사서에서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 『삼국사기』 등 국내 자료에서 그러한 기록을 전혀 찾을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어서 백제의 요서 점거와 백제군의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그러한 견해도 일리가 없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본 중국 역대 왕조사의 이른바 변방국(夷蠻族)의 사전史傳은 다른 책에 없다거나 다른 계통의 왕조사에 없다고 해서 보편성이나 역사성이 없다고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203쪽, 중국 땅에 설치한 백제군 

     

    ‘신라전’을 가장 먼저 수록한 『양서』에는 “그 나라(신라)는 소국이라 스스로 사신을 보내어 중국과 통교하지를 못하다가 보통 2년(521년)에 모태募泰(제23대 법흥왕)라는 왕이 비로소 백제의 사신에 따라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특산물을 바쳤다.”라고 하였다. 그 소국 신라는 『북사』와 『수서』가 편찬된 당나라 초기에도 중국인들에게는 그렇게 비쳤던 모양이다. 그러기에 신라에는 개국시조(혁거세)가 있었고, 초기에는 박·석·김 세 성씨가 번갈아 임금이 되어 하나의 왕조를 이루었던 역사를 전혀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백제의 어느 미개한 소국으로 폄하하는 소인배들의 말만 듣고 그렇게 ‘백제인이 도망가서 왕이 된 나라, 백제의 속국 신라’라고 적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 277쪽, 『양서』 등에 비친 초기의 신라-백제인이 신라의 왕이 되다

  • 목차
    머리글

    첫째 가름: 기자·위만 조선과 마한전의 문제

    제1장 『사기』와 『한서』의 조선전에는 기자조선이 없다
    1. 『사기』와 『한서』에 전하는 기자
    2. 역사적 근거가 없는 기자조선
    3. 후대에 와서 꾸며진 기자조선

    제2장 조선 사람 행색으로 들어와 왕이 된 위만
    1. 위만조선전의 전거
    2. 국호 조선을 답습한 까닭
    3. 망명 당시 위만의 행색

    제3장 ‘마한전’의 脊(背)皮는 우리말 등피(패)이다
    1. 전거
    2. 종래 학계의 견해
    3. 脊(背)皮는 등피(패)를 가리킨다
    4. 등피(패)의 용도

    둘째 가름: 고구려사 문제

    제1장 고구려 이름은 그 건국 이전에 있었다
    1. 『후한서』에 보인 고구려 현
    2. 고구려 현 곧 고구려국 설
    3. 고구려 현과 관계없이 건국된 나라 고구려

    제2장 고구려 시조 설화의 문제점
    1. 따로따로 전해진 동명전과 주몽전
    2. 부여 왕 동명 이야기
    3. 고구려 시조 주몽 설화
    4. 다른 점과 같은 내용, 하나의 이야기

    제3장 고구려 역대 왕들, 『삼국사기』와 다른 점
    1. 『후한서』와 『삼국지』에 보인 고구려 왕들
    2. 『위서』에 보인 고구려 왕통
    3. 그 밖의 왕조사와 고구려 왕들

    제4장 『수서』에 보인 고구려 왕 소열제
    1. 『수서』에서 전하는 고구려 왕들
    2. 당시 고구려 왕에게 소열제란 이름이 가능한가
    3. 소열제의 정체
    셋째 가름: 백제사 문제

    제1장 중국 땅에 설치한 백제군
    1. 『송서』에서 『당서』에 이르는 ‘백제전’
    2. 중국 요서에 설치한 백제군

    제2장 백제 시조 구이
    1. 시조 구이와 온조왕의 관계
    2. 구이는 어떤 인물인가

    제3장 백제로부터 불경을 전해 받고 비로소 일본이 문자를 쓰게 되다
    1. 일본이 문자를 처음 쓰게 된 연유
    2. 일본 고전에서 본 문자 및 불교 초전 사실
    3. ‘구득불경 시유문자’의 진실

    넷째 가름: 신라 및 발해 문제

    제1장 『양서』 등에 비친 초기의 신라 - 백제인이 신라의 왕이 되다 -
    1. 중국 왕조사에 보인 신라 초기
    2. 백제인이 신라의 왕이 된 사연

    제2장 낙랑이 신라의 별호가 된 사연
    1. 낙랑군공 신라왕
    2. 낙랑을 신라의 별호로 삼은 사례
    3. 신라를 낙랑이라 일컬은 까닭

    제3장 『당서』에 보인 북적 발해와 대조영
    1. 『당서』(『오대사』)의 발해전
    2. 『신당서』 ‘발해전’의 문제점
    3. 국내 사서에 전하는 발해와 대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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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소개

    김영태金煐泰 

     

    1932년 경남 창녕 출생.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했으며, 일본 교토 붓교대학(佛敎大學)에서 박사학위(문학박사)를 취득하였다.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와 불교문화연구소장, 한국불교학회장, 원효학회장, 원효학연구원장, 학교법인 금강대학교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동국대학교 명예교수와 원각불교사상연구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 및 논문 

     

    ��신라불교사상연구��(신흥출판사, 1979) 

    ��백제불교사상연구��(동국대학교출판부, 1985) 

    ��삼국시대 불교신앙 연구��(불광출판부, 1990) 

    ��한국불교사정론��(불지사, 1997) 

    ��한국불교사��(경서원, 2000) 

    ��(자세히 살펴본)삼국유사 1��(도피안사, 2009) 등 40여 권 

     

    「미륵선화고」(��불교학보�� 3·4, 1966) 

    「승려낭도고」(��불교학보�� 7, 1970) 

    「전기와 설화를 통한 원효 연구」(��불교학보�� 17, 1980) 

    「고구려 불교전래의 제문제」(��불교학보�� 23, 1986) 

    「백제불교의 일본 초전문제」(��불교학보�� 24, 1987) 

    「고구려 승랑에 대한 재고찰」(��한국불교학�� 20, 1995) 

    「『열반경종요』에 나타난 和會의 세계」(��원효학연구�� 3, 1998) 등 250여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