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료와 한방약

현대 의학의 주류인 서양의학 속에서 한의학의 자리는 어디인가?

서양의학은 분석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에 기초하여 증상을 치료하는 대증요법으로서 현대 의료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 반면에 한의학은 모든 현상을 ‘음양’으로 대비시켜 논하는 『주역』에 기본 이념을 두고 대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현상을 바라보는 음양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질병에 대한 접근 및 대처 방법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동서양의 의학은 각각 독자적인 발전을 해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의료 이원화체계로 되어 있어 동서 의학이 제대로 융화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최근 출간되고 있는 한의학 관련 종합서는 서양의학의 시각에서 바라본 질환에 대해 설명하고 그 병명에 맞는 증상과 처방을 제시하거나 고전에 대한 주해를 위주로 하는 서적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생약학을 전공한 저자가 서양의학적인 질환과 서양 약제 속에 한약을 녹여내고자 노력하였으며 현대 의료 속에서 한약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언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 책에서는 수백 년 동안 한약의 전형적인 형태로 알려져 있는 ‘달이는 한약’의 관점에서 벗어나 규격화된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한·양방 모두에 있어 상당한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며, 각종 질환, 서양약제, 한방약제가 함께 제시되기 때문에 본문만으로 이해가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번역자가 각주를 달아 부연 설명하고 있다. 또한 서양약제의 경우 일본과 미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약물 분류를 각주로 부연함으로써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책은 크게 총론편과 각론편으로 나뉜다. 

총론편에서는 전통 한의학인 중국 한의학과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해 온 한의학을 개괄하고, 현대 의료에서의 한의학 응용에 대해 설명한다. 

각론편에서는 감기에서부터 당뇨병, 고혈압, 그리고 이비인후과 질환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질환군에 걸쳐 현대 의료에 대한 한방 처방 응용을 실제를 다루고 있다.

책 속으로

중국 전통의 생약요법에서 진단(변증)에 입각하여 적당한 약물이 선택된다는 것은 서양의학과 같다. 전통 의료의 변증은 서양의학의 병리 진단과는 다른 관점의 증후 진단이며, 형이상의 장부나 병리 및 경과, 병성, 체력을 특수한 용어로 논하기 때문에 서양의학으로 번역하기 어려운 점도 많다. 이 책에서는 중국 전통의 변증법을 ‘중의학의 병리변증’과 ‘일본한방의 방제변증’으로 분류하여 논의하고 있다. 

중의학 생약 단위의 ‘병리변증’에서 증후로부터 ‘병리’를 상정하여 이것을 중약의 ‘약능’으로 조정하려고 하는 사고방식은 서양의학과 같은 논리이다. 

- 85쪽 

장기간에 걸쳐서 스테로이드제요법을 시행하면 각종 부작용 병태나 증후가 유발되므로 이것을 목표로 하여 한방제제 사용을 시도하고 있다. 스테로이드제의 부작용을 한방제제로 경감하기 위해서는 부작용 증후의 병성을 ‘열증’과 ‘한증’으로 크게 구별하고, 증후로부터 상정되는 병리와 약능에 따라 필요한 생약이나 한방제제를 선정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것은 전통 의학의 증후 진단이나 병리 진단을 현대 의료에 응용하는 예가 된다. 

- 124쪽 

최근 소시호탕에 간경변 환자의 간암 발생 예방의 가능성이 밝혀져서 주목받고 있다. 이와 같이 소시호탕 등의 한방제제가 만성간염 환자의 면역반응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지만 투여 대상의 선별, 약제의 투여량, 투여 기간 등 향후의 폭넓은 검토가 필요하다. 이러한 것으로부터, 소시호탕에는 

· 면역학적 기전에 의한 바이러스의 배제와 

· 각종의 기전에 의한 간세포 장애의 예방 치료 작용 

이 있다고 생각된다. 

- 220쪽 

약용인삼은 임상적으로도 기초적으로도 당뇨병에 유효하다고 하는 것이 검토되고 있다. 특히 지방세포에 있어서 

· 당으로부터 중성지방으로의 합성이나 중성지방으로부터 유리지방산으로의 분해를 억제하는 인슐린과 

· 중성지방의 분해를 촉진하는 대항호르몬(아드레날린, ACTH, 갑상선 자극호르몬, 성장 호르몬, 글루카곤) 

으로 조정되고 있는 것에 주목한 실험계에 대하여, 약용인삼은 인슐린 대항 호르몬의 지방 성분 활성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므로 당뇨병 치료약으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이것은 중국 전통 의료의 ‘음양’의 이원론을 모방하면 인슐린이 ‘음’, 대항호르몬이 ‘양’에 상당한다고 생각된다. 

- 287쪽 

최근 황련해독탕과 뇌기능개선제와의 병용례가 보고되었다. 여기에 따르면 뇌기능개선제로 너무 활성화된 정신 활동을 황련해독탕이 ‘조정’한 결과 임상적으로 환자의 행동이 조절되었다고 고찰되고 있으며, 이것은 흥미 있는 병용 효과라고 생각된다. 

또한 알츠하이머형 치매와 뇌순환 장애에 의한 치매는 서양의학의 발증 병리에서는 다른 질환이지만 노년기의 치매 증상이라고 하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이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의 기억 장애, 수면 장애에 대하여 조등산에 개선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 3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