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본문
한자1
[辛旽]
한자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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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설명)
(?~1371) 계성현(桂城縣) 옥천사 사비(寺婢)의 아들로 어려서 승려가 되었으며, 자는 요공(耀空), 법명이 변조(遍照)였다. 공민왕이 어느 날 어떤 사람이 검으로 찌르는 것을 한 승려가 구원해 주는 꿈을 꾸었는데, 마침 김원명(金元命)이 신돈을 데리고 왔다. 왕은 꿈에 본 승려라 이상히 여기고, 말하여 보니 총명하고 말을 잘하여 왕이 공경하고 국정(國政)을 묻게 되었다. 낙산사(洛山寺)를 원찰이라고 말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를 문수보살의 화신이라고 칭하였다. 그는 공민왕을 설득하여 문수법회(文殊法會)를 열었으며, 이를 계기로 현실 정치에 적극 참여하였다. 환속하여 이름을 돈(旽)이라 하고, 국정을 맡게 되었다. 공민왕의 신임을 받아 정치적 실세가 되었으나 급진적인 개혁으로 상층계급의 반감을 샀다. 1367년 영록대부 집현전 대학사에 올라 귀족 세력을 무너뜨리고자 천도(遷都)를 건의하였으나, 왕과 대신들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이후 왕의 신임을 잃고 1371년(공민왕 20) 왕을 시해하려고 음모를 꾸몄으나 도중에 발각되어 수원으로 유배되었고, 결국 참형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