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본문
한자1
[新生]
한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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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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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설명)
1946년 3월 창간한 잡지. 《신생》은 해방 직후 불교계 교단이 운영했던 신생사(新生社)에서 펴냈다. 1946년 3월 창간된 이래 동년 4·7·10월에 2·3·4호가 나왔다. 8·15해방 직후 불교계에서는 일제하의 교단 집행부가 퇴진하고 새로운 교단 집행부가 등장하였다. 이때 해방 직후 불교계를 혁신하려는 인사와 총본사 태고사 간부들의 상의 아래 기존 교단 집행부가 퇴진함과 동시에 불교 혁신을 준비하였다. 이는 조선불교혁신준비위원회(朝鮮佛敎革新準備委員會)에서 주도하여 전국승려대회(全國僧侶大會)를 준비하면서 혁신의 실무를 담당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1945년 9월 22~23일 태고사에서 전국 승려 대표 6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새로운 교단을 출범시킨 전국승려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 한국불교의 종명(宗名)을 결정하고, 새로운 교단기구(敎團機構)를 수립하고, 일제 잔재인 사찰령(寺刹令) 등을 부정하는 등 불교계 혁신의 틀이 정해졌다. 대회가 종료된 직후인 9월 24일에는 교단, 즉 중앙총무원의 간부가 취임하였고 교단 기관지의 책임자도 결정하였다. 책임자는 중앙총무원의 사회부장으로 취임한 박윤진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교단 기관지가 바로 《신생》이다. 기관지 명을 ‘신생’이라고 정한 것은 8·15해방을 기념하고 새로운 ‘광복조선(光復朝鮮)’을 키우자는 의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불교계의 잡지였던 《불교(佛敎)》가 1941년 조선불교조계종 총본사 태고사에서 등장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태고사의 기관지(機關誌)로 전환되었는데, 《신생》은 바로 그 《불교》지를 계승한 것이다. 이는 《신생》 창간호에서 이전의 불교사(佛敎社) 명을 신생사로 개명하였다는 사고(社告)를 낸 것으로 능히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