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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계신족론

본문

한자1
[鶴巖]
한자2
뜻(설명)
3권. K948, T1540. 세우 지음. 당(唐)나라 때 현장(玄奘)이 663년 7월에 옥화사(玉華寺)에서 번역하였다. 줄여서 『계신론』『계신족론』이라고 한다. 부파의 하나인 설일체유부의 가장 근본이 되는 여섯 아비달마, 즉 육족론 중의 하나이다. 「본사품(本事品)」, 「분별품(分別品)」으로 나누고, 「본사품」에서는 10대지법(大地法)·10대번뇌(大煩惱)·10소번뇌·5번뇌·오견(五見)·오촉(五觸)·오수근(五受根)·오법(五法)·육식신(六識身)·육촉(六觸)·육수(六受)·육상(六想)·육사(六思)·육애(六愛)를, 「분별품」에서는 상응(相應)·불상응법(不相應法) 등을 설명한다. 부처님의 입멸 후 성문(聲聞) 제자들의 관심은 불타의 교법을 어떻게 정확하게 이해하고 설명할 것인가 하는 점에 있었으며, 그 결과 생겨난 것이 아비달마 논장(論藏)이다. 부처님의 교법에 대한 정리 해석은 이미 경장(經藏) 안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부파 분열 이후 그것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마침내 경장 속에 포함시킬 수 없을 정도로 되었을 때 그것으로부터 독립하여 아비달마장(阿毘達磨藏)이라고 하는 불교성전의 새로운 장르가 성립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러 부파의 경장과 율장은 부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전체적으로는 유사하지만, 논장의 경우는 그 내용을 완전히 달리하므로 이로 인해 이 시기의 불교를 아비달마불교라고 한다. 아비달마라고 하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유부에서는 ‘불타 교법(dharma)에 대향(對向)하는 것’이라는 대법(對法)의 뜻으로, 팔리상좌부에서는 ‘뛰어난 법’[勝法 혹은 增上法]의 뜻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양자는 결국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아비달마 논서는 3단계의 발전 과정을 거친다. 첫 번째 단계는 아비달마적인 경향을 띠는 경장(經藏)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증일아함경』이나 증지부 경전, 혹은 『중집경(衆集經)』이나 『십상경(十上經)』과 같은 단경(單經)에서는 불타 교법을 법수(法數)에 따라 1법에서 10법, 혹은 11법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잡아함경』이나 상응부 경전은 경의 주제나 내용의 유형[相應]에 따라 정리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단계에 이르면 마침내 독립된 논서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때 논서는 아비달마적 성향을 강하게 띠는 경장과 질적인 면에서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 이를테면 유부의 『집이문족론(集異門足論)』이나 『법온족론(法蘊足論)』의 경우, 전자는 앞의 『중집경』의 내용을 부연 해석한 것이며, 후자는 아함경전 중에서 21가지 중요한 교설을 선정하여 각각의 장에서 그 교설을 담은 경문을 먼저 제시한 다음 이에 대해 상세히 해석하는 형태의 논서이다. 따라서 이 단계의 논서는 아직 경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것이 아니며, 말 그대로 다만 불타 교법에 대한 해석 정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부파와 공통되는 요소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예컨대 팔리상좌부의 『담마상가니(Dhammasaṅganī)』와 『위방가(Vibhaṅga)』는 앞의 두 논서와 유사한 성격의 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종합 해설된 각 교설은 점차 부파에 따라 매우 복잡한 체계로 해석되고, 각 술어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도 극단적일 정도로 자세한 분석이 이루어지게 된다. 예컨대 『아비달마발지론(阿毘達磨發智論)』(20권)에서는 이전의 개별적인 논의를 근거로 하여 유부학설 전반을 주요 범주에 따라 8장(雜結智業大種根定見의 8蘊)으로 정리 조직하여 논술하고 있으며, 나아가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200권)과 같은 방대한 분량의 백과사전식 주석서가 작성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 단계에 이르게 되면 아비달마는 더 이상 불타 교법의 해석이나 조직에 머물지 않고, 이전 시대의 여러 아비달마를 기초로 하여 웅장한 구성을 지닌 독자적인 교의 체계를 구축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설일체유부의 『구사론(俱舍論)』과 이에 상응하는 남방 상좌부의 『청정도론(淸淨道論, Visuddhimagga)』이다. 그는 스승 붓다미트라(Buddhamitra)가 수론(數論, Sāṃ̇khya)의 외도 빈드야바신(Vindhyavāsin)에게 논쟁에서 패배하자, 그를 논파하기 위해 『칠십진실론(七十眞實論)』을 저술하였으며, 또한 『대비바사론』을 배워 그 교의에 깊이 통달한 뒤 대중들에게 강의하였다. 그러면서 하루 1게(偈)씩 모두 600여 수의 게송으로 그것을 정리하여 유부의 본고장인 카슈미르의 비바사사(毘婆沙師)에게 보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이해하기가 어려워 장행(長行)의 해석을 청하였으므로 이에 따라 저술된 것이 바로 이 『아비달마구사론』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설일체유부의 교의를 중심으로 하여 논설하면서도 그 뜻에 치우침이 있는 곳은 경부(經部)의 교의로써 논파하고 있어 카슈미르의 비바사사들은 그들의 종의(宗義)가 파괴될 것을 우려하였다. 『구사론』이 저술되어 반포된 직후 한편으로는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해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 설을 비판함으로써 설일체유부의 정통 학설을 밝힌 논서로 세 종류가 현존한다. 현장(玄奘)의 한역(漢譯)으로만 존재하는 카슈미르의 정통 유부의 종장(宗匠) 중현(衆賢, San˙ghabhadra)이 지은 『아비달마순정리론(阿毘達磨順正理論)』(80권, 한글대장경 178~181)과 『아비달마장현종론(阿毘達磨藏顯宗論)』(40권, 한글대장경 200201), 그리고 아비달마의 등불이라는 뜻의 작자 미상의 『아비달마디파(Abhidharmadīpa)』가 바로 그것이다. 앞서 진제의 전승에 따라 중현은 비바사의 교의를 서술한 1만 송의 『광삼마야론』과 비바사의 교의를 옹호하면서 『구사론』을 논파한 12만 송의 『수실론』을 저술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아마도 『현종론』과 『순정리론』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현종론』서문에 의하면, 중현은 먼저 『순정리론』을 짓고 그 문구가 너무나 번잡하고 찾아보기 어려워 그 요점만을 간추려 『현종론』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순정리론』이 본론의 일언 일구에 대해 파사(破邪)를 위주로 하는 광박(廣博)한 논서라면 『현종론』은 적극적으로 카슈미르 유부종의 정의(正義)를 간추려 현정(顯正)을 목적으로 하는 약론(略論)으로, 후자의 경우 서품(序品)이 덧붙여진 것을 제외하면 『구사론』을 비롯한 세 논은 논의의 체계가 동일하다. 그리고 『아비달마디파』는 게송으로 이루어진 「아비달마디파」와 그것의 산문 주석인 「비바사프라바(Vibhạ¯sa¯prabhāvritti)」를 일컫는 일군의 문헌으로 1959년 P.S. Jaini에의해 교정 출간되었는데(Tibetan Sanskrit Works Series, vols.Ⅳ, Patna, 1967), 본론의 작자는 스스로를 등불을 밝히는 자(Dīpakāra)로, 세친을 구사론주(Kośakāra)로 칭하면서 『구사론』을 비판하고, 카슈미르의 정통 유부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 이 같은 정통 유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구사론』은 여전히 설일체유부 학설의 정요로, 또한 불교학의 기초 입문서로서 그 명성을 떨쳐 인도에서는 덕혜(德慧, ⓢ Gunamati)세우(世友, ⓢ Vasumitra)안혜(安慧, ⓢ Sthiramati)진나(陳那, ⓢDignạ̄ga)칭우(稱友, ⓢ Yásomitra)만증(滿增, ⓢ Pūrṇavardhana)적천(寂天, ⓢ Śāntideva) 등이 주석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범본으로 현존하는 것은 안혜의 『탓트바아르타(Tattvārtha)』(한역은 『俱舍論實意疏)』란 명칭으로 일부만 현존)와 칭우의 『스푸타아르타(Sphụār-thaabidharma-kośavyākhyā)』뿐이며, 이것과 더불어 만증의 『락샤나아누사린(Laḳsạnānusarin)』, 진나의 『카르마프라디파(Karmapradīpa)』, 적천의 『우파이카(Upaika)』는 티베트 역으로만 존재한다. 티베트 전승에 따르면 칭우는 현장의 스승인 계현(戒賢)논사(529~645)와 동시대 인물로, 그는 세우(世友)나 덕혜(德慧)의 주석에 왕왕 세친의 진의를 잘못 이해한 곳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아 진의를 드러내기 위해 ‘명백한 뜻’이라는 의미의 『스푸타아르타』를 저술하였다고 하는데, 19세기 초 네팔에서 수집되어 부르누프에 의해 보고된 이래 가장 고전적인 주석으로 꼽히고 있다. 『구사론』은 두 번에 걸쳐 중국에서 전역(傳譯)되었다. 첫 번째는 진제(眞諦, 499~569)에 의한 『구사석론(俱舍釋論)』(22권)이고, 두 번째가 현장(玄奘, 602~664)의 『구사론』이다. 진제 이전에도 이미 몇 가지의 유부의 논서, 이를테면 『아비담팔건도론(阿毘曇八犍度論)』(『발지론』의 구역, 383년 僧伽提婆와 竺佛念 번역), 『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391년 승가제바와 혜원 번역), 『잡아비담심론』(435년 僧伽跋摩 번역), 『아비담비바사론』(439년 浮陀跋摩 등 번역) 등이 번역되었지만, 진제의 『구사석론』이 번역된 이후 중국의 비담종(毘曇宗)은 구사종(俱舍宗)으로 일신하게 되었다. 진제는 563년 정월부터 567년 12월에 걸쳐 이 논을 번역하여 강론하고 중역(重譯)하였으며, 아울러 『구사론본송(俱舍論本頌)』1권과 『구사론소(俱舍論疏)』16권, 『구사론실의소(俱舍論實義疏)』53권도 함께 번역하였다고 전하고 있지만 현존하지 않는다. 현장(玄奘)의 제자인 신태(神泰)가 『구사론소(俱舍論疏)』(30권, 줄여서 『泰疏』라고 함)를 지었고, 보광(普光)은 『구사론기(俱舍論記)』(30권, 줄여서 『光記』라고 함)를, 법보(法寶)는 『구사론소』(30권, 줄여서 寶疏라고 함)를 지었다. 그리고 이후에 원휘(圓暉)가 『구사론송소(俱舍論頌疏)』(30권)를 지었는데, 많은 부분이 산실된 『태소』를 제외한 3부의 주석을 구사 3소(疏)라고 한다. 이 중 『광기』는 현장이 그의 역장(譯場)의 최고 필수자(筆受者)였던 보광에게 직접 전승해 준 설이라는 점에서 전통적으로 다른 어떤 주석보다 권위를 인정받아 왔다. 또한 티베트에서는 지나미트라(Jinamitra)에 의해 『아비달마구사소(阿毘達磨俱舍疏)』라는 명칭으로 번역되어 현존하는데(東北目錄 No.4090), 그 내용은 현장 역본과 거의 일치한다. 불교의 모든 교학은 이 논서에 기초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불교를 체계적이고도 조직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사론』의 학습이 필요하다는 데 본론의 가치가 있다. 이역본으로 『아비달마구사론석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