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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전

연수

본문

한자1
[華嚴經觀音知識品]
한자2
뜻(설명)
(904~975) 중국 오대십국시대와 북송 초에 활동했던 선승으로 선종과 정토종의 수행을 겸하였다. 선정쌍수(禪淨雙修)를 하여 염불선(念佛禪)을 일으켜, 법안종(法眼宗)의 제3조이자 정토종(淨土宗)의 제6조가 되었다. 호는 영명(永明: 연수가 주석했던 사찰의 이름에서 따옴), 자는 충현(沖玄)·포일자(抱一子)이다. 속성은 왕(王)씨이며, 절강성 임안부(臨安府) 여항(餘杭)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출가할 뜻을 가졌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관리가 되었다가, 28세 때 설봉의존(雪峰義存)의 법을 이은 취암영참(翠巖令參)에게서 득도하였다. 그 후 천태덕소(天台德韶)의 법을 이어 법안종 3세가 되었다. 광순(廣順) 2년(952) 설두산(雪竇山) 자성사(資聖寺)로 들어갔다가, 송나라 때인 960년(건융 1) 오월(吳越) 충의왕(忠懿王)의 청을 받고 영은사(靈隱寺)에 머물다 이듬해 영명사(永明寺, 후에 淨慈寺)로 옮겼다. 선과 염불을 겸수하여 저녁에는 언제나 행도염불(行道念佛)을 했다고 한다. 왕이 서방광교전(西方廣敎殿)을 세워 그를 머물도록 했으므로 석지종효(石芝宗曉)가 연사(蓮社)의 제7조로 받드니, 모든 이들이 스님을 자씨(慈氏, 彌勒)의 하생으로 숭배하였다. 고려의 국왕이 그의 학덕을 경모하여 36명의 승려를 유학 보냈는데, 그 때문에 송(宋)에서 쇠퇴하던 법안종이 고려에 널리 성행하게 되었다. 밤에는 귀신에게 먹을 것을 주고, 낮에는 방생하며 염불하다가 975년(개보 8)에 입적하였다. 시호는 지각(智覺)선사이다. 저술로는 『종경록(宗鏡錄)』100권을 비롯해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3권『유심결(唯心訣)』 등 60여 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