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송광사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및소조십육나한상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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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설명)
보물. 27구(불상 3, 나한 16, 좌우제석천 2, 용녀 1, 동녀 1, 사자 2, 장군 2), 발원문 7점. ‘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은 1656년(효종 7) 만들어진 불상으로, 당시 제작된 나한상 중 수량과 규모면에서 가장 크다. 참여한 조각승도 30명 이상이나 되는데, 1622년 왕실 사찰인 자수사(慈壽寺)와 인수사(仁壽寺)의 불상 조성에 참여한 장인의 숫자가 조각승 13명, 야장(冶匠) 4명이었음을 감안하면 훨씬 커다란 규모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일군의 불상은 수조각승 무염(無染)의 통솔 아래 1~4명씩의 조각승들이 분담해서 제작하였고, 참여 조각승들의 면면도 무염승일파, 현진청헌파, 수연파 등 역량이 뛰어난 승려들로 구성되었다. 17세기 대표적 승려 벽암각성(碧巖覺性, 1575~1660)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 만큼 이 나한전 불사의 중요성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당시 유행한 목조와 소조, 채색 기법 등을 두루 활용한 제작 방식으로 작가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으며 작품성 또한 뛰어나다. 특히 나한상과 동자상을 일체형으로 제작한 작자의 창의성이 돋보이며, 그 외에도 영산회상에 등장하는 용녀헌주상은 유례가 드물다. 뿐만 아니라 완주 송광사 불상은 조각과 더불어 개금개채 작업 등 조각승과 불화승 간의 협업 체계를 잘 보여준다. 영역이 다른 화원들이 협업 관계를 어떻게 구축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서, 당시 송광사를 본산으로 활약한 조각승들의 활동 체계와 제작 방식, 경향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