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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심

본문

한자1
한자2
뜻(설명)
1) 우주의 종극적 실재는 마음뿐으로서 외계(外界)의 사물은 마음의 변현(變現)이라는 의미이다. 유식종(唯識宗)에서는 이 유심을 성립시킬 적에 만유의 현상에 속한 심식(心識)에 대하여 입론(立論)하며, 우리 각개가 상대한 심식에 대하여 식(識)의 4분(四分)을 세운다. 우리들이 인식하는 대상으로 삼는 객관은 실로 인식 작용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하는 실경(實境)이 아니고, 견분(見分)에 의하여 마음속에 비치는 상분(相分), 곧 본질을 연(緣)으로 삼아 생긴 영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본질은 제8 아뢰야식에 함장(含藏)된 종자로부터 생긴 것이므로 마음으로 만든 것에 불과하다. 일체의 사물은 모두 심식이 변현한 것이므로 삼계(三界)는 유식만이 종극의 실재요, 그밖에 별법(別法)이 없다고 한다. 또 『기신론(起信論)』과 화엄종 등에서는 만유의 본체인 진여심(眞如心)에 나아가 입론(立論)한다. 만유는 모두 일심진여(一心眞如)의 나타냄에 불과하다. 진여심에는 수연(隨緣)과 불변(不變)의 두 방면이 있어, 불변하는 방면으로는 진여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지만, 수연하는 방면으로는 염정(染淨)의 연을 따라서 갖가지의 차별된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상은 일심진여의 현현으로서 그 체는 진여를 여읜 것이 아니다. 삼계가 마음뿐이며 마음 밖에 다른 법이 없다고 하는 학설이다. 2) 1918년 9월 창간. 《유심》은 한용운이 주도한 유심사(惟心社)에서 간행한 불교계 청년들을 계몽하기 위한 수양잡지(修養雜誌)로서, 잡지의 편집 겸 발행자는 한용운이었다. 1918년 9월 창간된 이래 동년 10월에는 2호가, 12월에는 3호가 나왔다. 《유심》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용운의 행적 및 사상을 살펴볼 필요성이 있기에 《유심》 발간 이전의 활동을 중심으로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10년 한국이 일제에게 국권을 침탈당하자 그 이전부터 일본불교에 우호적인 자세를 견지하거나 혹은 일본 세력을 이용하여 불교계를 주도하려는 불교계의 일부 인사들은 새로운 변화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그 대처로 나타난 결과가 이회광이 주도했던 원종(圓宗)이 일본 조동종(曹洞宗)과 체결한 ‘맹약(盟約)’이었다. 이 맹약은 요컨대 한국불교를 일본불교에게 매종한 성격을 벗어날 수가 없기에 전 불교계에서는 그 반대 움직임인 임제종(臨濟宗) 운동이 일어났다. 임제종 운동은 전라도경상도 일대에서 일어났으며, 한용운박한영 등이 주도하였다. 그러나 1912년 6월경에 이르러 일제의 탄압 등으로 인해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용운은 임제종 중앙포교당을 거점으로 임제종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였다. 그는 조선불교회(朝鮮佛敎會) 및 불교동맹회(佛敎同盟會)를 결성하였다. 이 조직은 사찰령에 구속되지 않으면서도 당시 주지들을 배제하고, 불교 청년들을 기반으로 자주적인 불교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조직의 결성을 통한 노력도 끝내 일제의 탄압으로 정상화되지 못하였고, 한용운은 이러한 정신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을 강구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유심》의 간행을 통한 불교 청년의 계몽운동이었다. 청년들의 의식 계몽과 당시 사회의 정황, 그리고 불교교리 등이 자연스럽게 편집의 중심이 되었다. 《유심》에 기고한 집필진을 보면 한용운을 비롯해 박한영, 김남전, 백용성, 권상로, 강도봉, 이능화 등 당시 불교계에서 불교의 포교 및 대중화에 일익을 담당한 주역들이었고, 31운동에 참여한 이광수와 최린도 기고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