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문절차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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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仔蘷文節次條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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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설명)
1권 1책. 계파성능(桂坡聖能, 생몰년 미상)의저술로 1724년(경종4) 경남 합천 가야산 해인사(海印寺)에서 간행하였다. 여러 의식문을 우리나라의 신앙 형태에 맞도록 수정 보충해서 편찬한 불교 의식집이다. 총 27장이지만 67장과 20~23장이 결락되어 21장만이 남아 있다. 성능은 발문에서 “ 『자기산보문(仔夔刪補文)』에서 초략하여 실제의 행사에서 필요로 하는 부분을 엮었다.”라며 수륙재의 구체적 설재(設齋)에 필요한 의식만을 뽑아 엮었음을 밝혔다. 『자기산보문』은 청나라 하서(河西)가 『자기문(仔夔文)』을보충하고 편집한 책이고, 『자기문』은 1150년 금(金)나라의 자기(仔夔)가 양(梁)나라 무제(武帝)의 『수륙재의문(水陸齋儀文)』에 의식문을 보충한 책이다. 즉 『자기문절차조열』은 『자기문』을 수정하고 보충한 책이며, 성능은실제 수륙재에서 설행하는 의식만을 선별하여 한국적 의식집을 만든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수륙재를 행할 때 설치하는 옹호단(擁護壇)의 배치와 재의절차 등을 소상히기록했는데, 위목(位目) 규정에 불교와 거리가 먼 신들이 등장한다. 즉 풍백우사(風伯雨師), 당산천왕(當山天王), 용왕, 성황, 제산(諸山), 제선(諸仙) 등의 단(壇)을 설치하도록 하였다. 이는 조선 중기 이후 민속 신앙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양상을 보여 준다. 수륙재는 양나라 무제가 처음으로 실시했고, 우리나라에서는 971년(광종 22) 수원갈양사에서 국사 혜거(惠居)가 처음 시행했다. 조선시대에도 전쟁으로 희생된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 국행(國行) 또는 민간에서 크게 성행했는데, 특히 수륙재는 당시 유행하는 모든 민간신앙의 형태를 수용했기 때문에 신앙 형태의 변화에 따라 의식문(儀式文)도 많은 변천을 가져왔으며, 이 책의 저술도 그 일환이었다. 중간(重刊) 서문에 있는 낙암의눌(洛巖義訥)의 “의식문 대부분이 임진란의 병화에 없어진 지 오래되자 전 총섭 성능이 인멸을 걱정하여 공인(工人)과 자재를 모아간역(刊役)한 지 수개월이 안 되어 완성하였다.”라는 말은 당시의 시대상을엿볼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