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백양사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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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城白羊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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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설명)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백암산 백양사소재 목조 불상.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205cm, 무릎 폭148cm의 불상으로서, 1607년(선조 40) 현진(玄眞)을 비롯한 3명의조각승이 조각하였다. 선조의 선왕(先王)과 선왕후(先王后) 및 왕실 조상들의 성불(成佛)을 기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등 국가적 전란으로 수많은 불교 유물이 소실되어 불교 유물 복구의 과정에서 제작된 것으로서, 이 시기 이전에 조성된 목조 불상 중 규모가 가장 큰 불상이다. 불상 조성의 과정이나 불사 전체의 진행 과정을 알 수 있는 발원문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대좌 아래에 들어 있던 묵서(墨書)에는 불상 제작연대와 관련된 제작자 등 핵심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서 17세기의 불교 조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불상을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현진(玄眞)은 17세기를 대표하는 조각승으로,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그의작품 중 가장 이른 것으로 알려진 진주 월명암 목조아미타불좌상(晉州月明庵木造阿彌陀如來坐像, 보물, 1612년 제작)보다 5년 앞서 조성된것으로 확인되어 조각사 연구에 의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제작 기법 측면에서는목조(木造)와 소조(塑造) 기법을 함께 사용하였다. 나무로 먼저 불상의 전체적인 윤곽을 만들고, 그 위에 가사의 주름이나 살집 등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표현하기 위해 진흙을 사용하여완성하였다. 따라서 큰 규모의 불상임에도불구하고 원만하고 당당한 얼굴과 어깨, 신체의 굴곡을 따라 유기적으로 처리된 옷주름 등에서 장대한 형태미를 볼 수있다. 이런 장대한 형태미를 표현하는 방식은 17세기에 새롭게등장한 소조불상의 조형 감각이다. 이 불상은 현진의 가장 초창기 작품이라서 그의 작품세계를 연구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2005년 발견된 복장물에서 1741년(영조 17)에 명부전의 시왕상 중수와 함께 개금(改金) 중수를 진행했다는 복장기와 1775년에도 개금 불사를 했다는 중수기문이 발견되었다. 1741년 개금에는 승려 철관을증명으로 하여 취성, 사인, 계잠, 성순, 도환, 계초가 화원(畵員)으로 참여하였다고 하며, 1775년 개금에는 백월, 색민, 정암 등이 참여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이 불상은 조성 과정뿐만 아니라 중수 내력과 참여했던 화원(畵員)들의역할까지 확인할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