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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전

제관

본문

한자1
[諦觀]
한자2
뜻(설명)
(?~970), 고려 전기의 승려이다. 961년(광종 12)에 왕명으로 송에 건너가천태 전적들을 전해 주고, 나계(螺溪)의 전교원(傳敎院)에 주석하고 있던천태종 제15조 의적(義寂)법사에게 나아가 수학하였다.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를 저술하여 그 이름을 중국일본 등에 떨쳤다. 『불조통기(佛祖統記)』 권10에 그의 전기가 일부 전하고 있다. 중국의 오월왕(吳越王) 전숙(錢俶)은 『영가집(永嘉集)』에 ‘동제사주(同除四住)’라는 말이있는 것을 보고 덕소(德韶)에게 그 뜻을 물었다. 덕소는 이 말을 교의(敎義)라 하여 천태종의 의적(義寂)에게물어보도록 하였다. 의적은 이것이 지자대사(智者大師)가 지은 『묘법연화경현의(妙法蓮華經玄義)』의 「위묘(位妙)」에 나오는 문구라고 하면서, 당나라 말기에 천태종의 책들이 모두 해외로 유출되어이제는 다시 보기어렵게 되었음을 말하였다. 이에 오월왕은 사신에게 글월과 함께 50종의 보배를 주고 고려에 가서 천태종 관계 서적을 구해오도록 하였다. 960년(광종 11) 제관은 광종의 명을 받고 중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때 광종은 “교승(敎乘) 가운데 『지론소(智論疏)』『인왕소(仁王疏)』『화엄골목(華嚴骨目)』『오백문론(五百門論)』은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였으며, 또 중국에 가서 스승을 구한 다음 어려운 질문을 던져 대답하지 못하면 곧 책들을 거두어 가지고 올 것을 당부하였다. 중국에 간 제관은 나계사(螺溪寺)의 의적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고 10여 년 동안 함께 천태학을 연구하였다. 그때 자신의 유일한 저술인『천태사교의』를 지었으나, 상자에 감추어 두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제관은 앉은 채 죽었으며, 끝내 귀국하지 못하였다. 죽은 뒤 그가 쓰던 상자에서 빛이 났으므로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열어 보니 『천태사교의』만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가 천태종의 서적을 중국에 전함으로써 중국의 천태종은 활성화되었지만, 제관이 고려로 다시 돌아오지못함에 따라 우리나라 천태종의 전맥(傳脈)은 끊어지게 되었다. 이에 의천(義天)이 중국에 가서 지자대사탑 앞에서 “옛날 제관이 교관(敎觀)을 전하였으나, 지금 대를 이을 자가 끊어지게 되어 제가 법을 위하여 몸을 돌보지 않고 찾아와서 대도(大道)를 구하나이다.”라며 기원하고, 천태학을 배워 고려로 돌아와서 천태종을 세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