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종
본문
한자1
[曹溪寺鐘]
한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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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설명)
일제강점기에 현재 동국대학교 자리에 있던 일본 사찰 조계사(曹溪寺)에 있던 범종. 그 지역이 당시 대화정(大和町)이라 불렸기 때문에 이 사찰도 대화정 조계사라 한다. 이 사찰이 폐사되고 나서 종은 북한산성의 태고사(太古寺)로 옮겨졌고, 태고사는 다시 현재의 조계사 자리로 옮기면서 후에 조계사로 개명하였는데, 이때부터 조계사종이라 불리게 되었다. 원래는 경기도 용문산 보리사(菩提寺)에 걸려있던 범종이었으나 보리사가 폐사되면서 그 근처의 상원사로 옮겼기 때문에 용문산 상원사종이라고도 불린다. 구한말 의병 활동의 근거지였던 용문산 일대에 전화(戰火)가 자주 발생하면서 보리사와 마찬가지로상원사도 화재를 입었으나 범종은 보존되었다. 이것을 1907년 대화정 조계사에서 사들여 힘들게 옮긴 끝에 1908년 4월 23일이 돼서야 걸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이것으로 제야의 종을 울렸다고 전한다. 1939년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보물로 지정되었다. 당시 이 분야 전문가 세키노 다다시(関野貞)는 신라 양식과 중국 양식을 절충한 범종으로 고려 초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평가하였다. 1945년 이후남산의 일본식 사찰과 신사가 모두 폐기될 당시 범종은 종로의 태고사로 옮겨졌고, 그 뒤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1962년 12월 12일에 문화재관리총국은 이 범종이 위작이라는 이유로 국보에서 해제하였는데 문화재위원 황수영이 주도한 결정이었다. 그 이유는 일본인이 제작한 일본 범종의 전형적인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따른다. 곧 원래의 보리사 범종은 일본으로 빼돌리고 조계사에는 위작으로 대체하였다는 견해가수용되면서 문화재에서해제되었다. 위작으로 간주된 이 종은 1998년에 경기도 파주시 보광사로 옮겼다가 2010년 원래의 범종이 있었던 상원사가 복원되면서그곳에 걸리게 되었다. 그러나 검토하는 방법과 견해에 따라 진위 여부는 아직도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특히 일본 범종과 유사하다는 견해도 화학적 검토 등에서 입증되지 않고 있어 결정적이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