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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전

죽림사

본문

한자1
[竹林寺]
한자2
뜻(설명)
1)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풍림리 중봉산(中峰山)에 있는 사찰. 『동사열전(東師列傳)』 권1 「아도화상전(阿度和尙傳)」에 “남평(南平) 중봉산(中峯山) 「죽림사기(竹林寺記)」에 ‘신라 눌지왕(訥祗王) 때 아도화상이 세웠다.’라고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중봉산죽림사사적(中峰山竹林寺事績)」과 「죽림사기(竹林寺記)」 등에 이러한 사실이 전하지만 아도가 창건했다는 것을 불확실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또 「죽림사사적」에는 종죽암(宗竹庵)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되어 있다. 보물로 죽림사세존괘불탱(竹林寺世尊掛佛幀)이있는데 조선 중기 괘불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귀한 작품이다. 2)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에 있는 사찰로 신라시대 때인 809년(헌덕왕 1)에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중건되었으며, 1815년 임취봉과 이상공 등의 시주로 중건, 1830년에도 한 차례 중수가 있었으나, 625전쟁으로 폐사되었다. 1990년과 1995년 승려성수가 각각 대웅전과 삼성각을 새로 짓고 2000년부터 불사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3)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에 있는 사찰로 신라시대 때인 610년(진평왕 32) 법정대사가 화남사(華南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사찰이 창건된 후에 법정대사는 선덕여왕의 부탁을 받아 화친사(和親使)로 일본에 건너가 많은 성과를 거두고 돌아왔다. 선덕여왕은 그의 노고에 대한 답례로 화남사 옆의 땅약 900여 결(結)을 하사하였는데, 그때 심은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죽림사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보조국사 지눌이 중창을, 조선시대에는 무학이 중건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왜적의 방화로 대웅전명부전이 소실되었고보광전만 남았는데, 전란 이후 인덕당을 새로 건립하여 명맥을유지했다. 1992년 산령각과 요사채인 견을당을 새로 지었고, 다음 해에는 대웅전을 새로 지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4)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에 있는 사찰로 신라시대 때 창건되었다가 조선시대인 1809년(순조 9년)에 중창되었다. 1929년 기록된 죽림사 상량문에 의하면, 신라 때 원앙부인이 수도(修道)를 하던 도량이면서 동시에그의 아들 안락국이 큰 깨우침을 얻은 자리이다. 19세기 초에 한차례 중창한 후 1927년 승려 용연과 불교기성회가 조직되어 모연을 통해 초옥 5칸을 사들였다. 이때의 불교기성회는 다시 불교협회를 설립하고 기림사의 칠성각 재목을 양도받아 1929년 1월 12일 중수공사를 시작해서 그해 6월 12일 상량(上梁)하였다. 1980년 대웅전과 유치원을 새로 건립하고 1996년 삼성각을 신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