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응
본문
한자1
[震應]
한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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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설명)
법명은 혜찬(慧燦, 1873∼1941). 진응은 법호이다. 출가 전에 한학을 배우고, 출가 후에는 10년간 내전을 두루 익혔다. 한국불교의 근현대 시기 강맥(講脈)은 한영정호(漢永鼎鎬, 1870∼1948)와 진응혜찬(震應慧燦)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1896년 응암스님의 법을 이은 후 조선의여러 사찰에서 강사(講師: 지금의 강주에 해당)를 지내며후학을 양성했다. 구례 천은사 수도암(2차례)화엄사 보적암산청 대원사 강사를 지냈고, 화엄사 불교전수부(佛敎專修部) 및 천은사 불교전문강당범어사 불교전문강당 강사를지냈으며, 1926년에는 묘향산 보현사 불교전문강당 강사를 지내기도 했다. 1908년 화엄사 경내에 신학문 교육기관인 신명학교(新明學校)를 설립했다. 1909년 4월 신명학교 교원으로취임한 스님은 같은 해 11월 15일부터1910년 6월까지 신명학교 교장을 맡아 조선의 불교 인재 양성에 혼신을 다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조선이 강제로 합병된 후, 불교계 또한 이회광 일파를 비롯한 몇몇 승려들이 조선불교를일본 조동종에 병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에 스님은 박한영, 김종래, 한용운 등과 함께 1910년 10월5일(음) 광주 증심사에서 승려대회를 열고, 이듬해 1월 순천 송광사에서 임제종을 세우기로 결의했다. 이 임제종 운동에 의해 조동종 병합 시도가 무산되었다. 일제에 의해 30본산이 지정될 때 화엄사가 본산에서 제외되어, 화엄사의 본산 승격을위한 노력을 기울여 본산으로 지정받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