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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전

진종

본문

한자1
[震鐘]
한자2
뜻(설명)
(1864~1940) 조선 말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승려로 호는 용성(龍城), 속성은 백(白)씨, 속명은 상규(相奎)로 남원에서출생하였다. 16세에 해인사 화월(華月)에게 출가하여 선교를공부하고 환성지안(喚醒志安)의 법을 이어받았다. 1911년 서울에서 현대적인 포교를 시작하였다. 1919년 2월 27일 한용운으로부터 31운동 계획을 전해듣고, 이에 찬동하여 자신의 인장을 한용운에게 위탁하여 서명 날인하게 함으로써 민족 대표 33인의 불교계 대표로 참가했다. 당시 불교 대표는 2인으로 백용성과 한용운이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결속에 앞장섰고, 31운동 당시 태극기를 흔들 것을 제안하였다. 이 사건으로 징역 1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31운동 이후에도 불상불교에 관련된 유물을가장해 상해임시정부로꾸준히 독립운동자금을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출옥 후 불교 종단의 정화를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1920년대에는 일제가 사회 문화 전반에 왜색을 도입하면서 불교에서도 대처승을 인정하는 정책을 시행하자 자신이 세운 대각사(大覺寺)를 중심으로 왜색불교 추방 운동에 앞장섰다. 1921년 한국불교사상 처음으로 한글판 『금강경』을 출간했다. 1924년 잡지 《불일(佛日)》을박한영과 함께 창간했고, 1926년에는 조선총독부에 승려의 결혼과 육식을 금지할 것을 요청하는 건백서를 두 차례 제출했다. 대처승을 인정하는 일본 정부 내무대신 앞으로 건의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한국불교의 장래를 위하여 선농병행설(禪農竝行說)을 주창하여 함양에 화과원, 북간도에농장을 만들었다. 특히 불교 경전의 한글 번역에 힘을 써 『조선글화엄경』 등여러 경론을 번역하였으며, 세수 77세, 법랍62세로 입적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공헌을 기려 1962년건국훈장 대통령장을, 1990년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귀원정종(歸源正宗)』, 『심조만유론(心造萬有論)』, 『각해일륜(覺海日輪)』, 『석가사(釋迦史)』, 『팔상록(八相錄)』, 『수심론(修心論)』, 『청공원일(晴空圓日)』, 『어록(語錄)』 등 다수의 저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