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불교사전

불교사전

체원

본문

한자1
[體元]
한자2
뜻(설명)
호는 목암(木庵, 1280년대~?) 속성은 이(李)씨. 본관은 경주(慶州). 법호는 목암(木庵)·향여(向如)이다. 이전(李瑱, 1244~1321)의 둘째 아들이며 고려 말의 대표적인 학자인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형이다. 각해대사(覺海大師)라는 시호를 받았다. 정확한 출가 연도는 알 수 없으나 20세 이전에 출가한 듯하며 출가 이후 선불장(選佛場)에서 높은 성적으로 합격하였다. 충선왕(忠宣王)에게 특별한 대우를 받아 높은 승직과 명찰(名刹)의 주지직을 제안 받았지만 한동안 노부모 봉양을 이유로 거절하였다. 1338년(충숙왕 복위 7) 양가도승통(兩街都僧統)의 지위에 있으면서 『화엄경』사경의 공덕주(功德主)를 맡았는데, 이 사경 자료는 현재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려 후기에 관음 신앙을 사상적으로 집대성했고 성주 법수사(法水寺) 주지, 1324년 고령 반룡사(盤龍寺) 주법(主法), 경주 동천사(東泉寺) 주지, 1338년 양가도승통(兩街都僧統)을 맡았다. 주석서 성격의 저술 4종이 전해지는데 자료의 내용으로 보아고려 후기 화엄사상계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지은 4종의 주석서는 (1) 『백화도량발원문약해(白花道場發願文略解)』, (2) 『화엄경관자재보살소설법문별행소(華嚴經觀自在菩薩所說法文別行疏)』, (3) 『화엄경관음지식품(華嚴經觀音知識品)』, (4) 『삼십팔분공덕소경(三十八分功德疏經)』이다. (1)은 1328년, (3)·(4)는 1331년에 저술된 것이 확인되며 (2)는 (1)보다 먼저 저술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이들 4종의 저술은 모두 해인사 사간본(寺刊本)으로 남아 있다. 특히 (1)은 의상(義湘)이 찬술한『백화도량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을 약해한 것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4종 저술에 나타난 특징을 종합해 보면, 14세기 전반기의 해인사를 중심으로 한 화엄사상계가 관음 신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영험과 공덕 신앙을 표방하면서 민간신앙까지도 적극 수용하여 염불 신앙을 강조하고 있었다는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그를 지원한 신도들은 주로 경주 지역의 향리층 인사들이었을 것으로 확인된다. 동천사(東泉社)·해인사·반룡사(盤龍寺)·법수사(法水寺) 등지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