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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전

최치원

본문

한자1
[崔致遠]
한자2
뜻(설명)
(857~?) 자(字)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또는 해부(海夫)이며 9세기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이다. 중국 당나라에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으며, 신라로 돌아온 뒤에는 진성여왕에게 시무책을 올려 정치 개혁을 추진하였다. 유교(儒敎)·불교(佛敎)·도교(道敎)에 모두 이해가 깊었고, 유불선 통합 사상을 제시하였다. 수많은 시문(詩文)을 남겨 한문학의 발달에도 기여하였다. 신라 47대 헌안왕(憲安王, 재위 857~861) 원년인 857년에 태어났으며, 부친은 38대 원성왕(元聖王, 재위 785~798) 때에 숭복사(崇福寺) 창건에 참여했다고 전해지는 견일(肩逸)이다. 48대 경문왕(景文王, 재위 861~875) 때인 868년에 12세의 어린 나이로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874년 예부시랑(禮部侍郞) 배찬(裵瓚)이 주관한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2년 동안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낙양(洛陽)등지를 떠돌면서 시작(詩作)에 몰두하여 5수(首) 1권(卷)으로 된 『사시금체부(私試今體賦)』, 100수1권으로 된 『오언칠언금체시(五言七言今體詩)』, 30수 1권으로 된 『잡시부(雜詩賦)』 등의 시문집을 지었으나,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876년 선주(宣州) 율수현(溧水縣; 지금의 江蘇省 南京市) 현위(縣尉)로 관직에 올랐으며, 이 무렵 1부(部) 5권으로 된 『중산복궤집(中山覆簣集)』을 저술하였다. 선주(宣州) 율수현위(凓水縣尉) 등을 역임하고, 병마도통(兵馬都統) 고병(高騈)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격황소서(檄黃巢書)>를 지어 동아시아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 885년 귀국했고, 897년에는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의 정치 개혁안을 올려 아찬(阿飡)에 제수되었으나 개혁안은 실행되지 못하였다. 이후 벼슬에 미련이 없어진 그는 전국을 유랑하다 해인사에 은거하였다. 신라 6부의하나인 사량부(沙梁部)에서 6두품의 신분으로 태어났으며, 오늘날 경주(慶州) 최씨의 시조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에는 본피부(本彼部)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1023년(현종 14년)에 내사령(內史令)으로 추증되었으며, 문묘(文廟)에 배향되며 ‘문창후(文昌侯)’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