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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전

태현

본문

한자1
[太賢]
한자2
뜻(설명)
생몰년 미상. 태현이라는 법명에 대해 『삼국유사』를 포함한 우리나라와 중국 문헌에서는 대현(大賢)이라 칭하는 경우가 많고, 일본의 주석서에서는 태현(太賢)이라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신라 유식종(唯識宗)의 종조이며 원측의 고족인 도증(道證)의 제자이다. 『범망경고적초(梵網經古迹抄)』에는 그가 화엄학을 익힌 뒤에 유식학에 입문하였다고 한다. 『비망초(備忘抄)』에는 현장(玄奘)에서 원측(圓測), 도증(道證), 태현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밝히고 있으며, 『촬요계몽(撮要啓蒙)』에서는 그의 저술을 경장(經藏)의 고적기(古迹記)와 논장(論藏)의 고적으로 나눌 수 있다는 언급이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그가 유가종(瑜伽宗)의 개산조로 경주 남산의 용장사(茸長寺)에 거주하였는데, 지혜와 언변이 정민(精敏)하고 판단이 분명하였으며, 법상종(法相宗)의 이치를 통달하여 후학들과 중국의 학자들이 그의 저서를 중요히 다루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저술은 객관적이고 공평무사하여, 함부로 사견을 섞지 않는 온건한 학적 태도를 보인다. 그의 중심 사상은 유식학에서 찾을 수 있지만, 화엄(華嚴)열반(涅槃)반야(般若)법화(法華)정토교(淨土敎)미륵 신앙(彌勒信仰)보살계 사상(菩薩戒思想) 등에 두루 통한다. 논부(論部)의 유식 계통에 관한 저술 11종 중 『성유식론학기(成唯識論學記)』8권이 현존하는데, 여기서 그는 『성유식론』을 체(體)와 제목과 문의(文義)의 세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해석한다. 저서로는 총 52종이 있다. 경에 관한 것으로는 『화엄경고적기(華嚴經古迹記)』10권, 『반야이취분경주(般若理趣分經注)』2권,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고적기』1권, 『신역금강반야경(新譯金剛般若經)고적기』1권,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고적기』1권, 『반야심경(般若心經)고적기』1권, 『반야심경주(般若心經注)』2권, 『법화경(法華經)고적기』4권, 『무량수경(無量壽經)고적기』1권,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고적기』1권, 『아미타경(阿彌陀經)고적기』1권, 『칭찬정토경(稱讚淨土經)고적기』1권, 『정토총료간(淨土總料簡)』1권, 『열반경(涅槃經)고적기』 8권, 『약사본원경(藥師本願經)고적기』 2권,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고적기』1권,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고적기』1권, 『미륵성불경(彌勒成佛經)고적기』1권, 『금광명경술기(金光明經述記)』4권, 『금광명경료간(金光明經料簡)』1권 등 20종이 있다. 율(律)에 관한 것으로는 『범망경(梵網經)고적기』 3권, 『범망경보살계본종요(梵網經菩薩戒本宗要)』1권, 『유가(瑜伽)계본종요』1권 등 3종이 있다. 논(論)에 관한 것으로는 『불지론(佛地論)고적기』 1권, 『광백론(廣百論)고적기』 1권, 『장진론(掌珍論)고적기』 1권, 『유가론(瑜伽論)고적기』4권, 『유가론찬요(瑜伽論撰要)』3권, 『성유식론(成唯識論)고적기』10권, 『성유식론결택(成唯識論決擇)』1권, 『광석본모송(廣釋本母頌)』3권, 『유식이십송(唯識二十頌)고적기』1권, 『섭대승론세친석론(攝大乘論世親釋論)고적기』1권, 또 『섭대승론무성석론(攝大乘論無性釋論)고적기』 1권, 『중변론(中邊論)고적기』 1권, 『변중변론(辨中邊論)고적기』1권, 『현양론(顯揚論)고적기』 2권, 『잡집론(雜集論)고적기』 4권, 『보살장아비달마고적합집(菩薩藏阿毘達磨古迹合集)』17권, 『성업론(成業論)고적기』1권, 『오온론(五蘊論)고적기』1권, 『백법론(百法論)고적기』1권, 『관소연연론(觀所緣緣論)고적기』1권, 『인명입정리론기(因明入正理論記)』1권, 『인명입정리론고적기』 1권, 『인명입정리론학기』 1권, 『인명정리문론(因明正理文論)고적기』1권, 『기신론내의약탐기(起信論內義略探記)』1권, 『법원의림대승심로장(法苑義林大乘心路章)』2권, 『법원의림석명장(法苑義林釋名章)』1권, 『대승일미장(大乘一味章)』1권, 『대법론(對法論)고적기』 4권 등 29종이다. 태현은 신라시대에 원효 다음으로 많은 저술을 남긴 저작가지만 이 저술 중 대부분은 거의 없어지고, 현재 『성유식론고적기』, 『기신론내의약탐기』, 『범망경고적기』, 『범망경보살계본종요』, 『약사본원경고적기』 등 5종만이 현존하고 있다. 태현이 경주 남산(南山)의 용장사에 머물 때 1장 6척의 미륵보살석상 주위를 돌면 석상도 태현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또한 경덕왕(景德王) 천보(天寶) 12년(753) 여름 큰 가뭄이 들었을 때, 태현이 『금광명경(金光明經)』을 강의하면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자 대궐의 우물물이 높이 솟구쳤다는 기록 등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