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아미타여래삼존석굴
본문
한자1
[軍威阿彌陀如來三尊石窟]
한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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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설명)
국보. 석굴 높이 4.25m, 본존상 2.18m, 우협시보살상 1.92m, 좌협시보살상 1.8m.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조성한 석굴사원이다. 1962년 발견·조사되면서 제2의 석굴암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는데, 이 석굴암과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경주 토함산 석굴암이 8세기 중엽인 774년에야 비로소 건립된 데 비해 이 석굴암은 7세기 중엽~말엽에 조성된 것으로 100여 년 이상 앞서면서 경주 토함산 석굴암의 모태가 된 것으로 본다. 경주 토함산 석굴암이 인공으로 석굴을 만들고 그 안에 부처를 모셨다면 이 석굴암은 거대한 천연의 암벽에 생성된 자연 동굴을 뚫어 조성한 석굴사원이다. 군위 아미타여래삼존석굴은 입구가 원형에 가깝고 내부 평면이 대체로 정사각형에 가까우며 천장은 궁륭형(穹窿形: 한가운데가 제일 높고 주위가 차차 낮아진 하늘 모양)을 이루고 있다. 지상에서 20m 높이에 있는 입구는 폭이 4.25m이고 길이가 4.3m이다. 내부에는 독립된 삼존석상을 석굴 벽면에 붙여서 안치했는데, 본존불인 아미타불과 좌우 협시보살로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을 배치했다. 별석(別石)의 네모난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본존상은 소발(素髮)의 머리 위에 높직한 육계(肉髻)가 솟아 있으며, 몸에 비해 큰 얼굴에는 삼국시대 불상에 보이던 친근감 있는 미소가 아니라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다. 어깨가 딱 벌어진 당당한 체구에 통견(通肩)의 법의는 몸의 굴곡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옷주름이 무릎을 지나 앉아 있는 대좌 아래까지 늘어진 형태인 상현좌(裳懸座)를 이룬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항마촉지인을 취한 우리나라 불상의 최초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본존상의 뒤쪽 바위의 벽면에는 장식이 없는 두광과 신광을 새겨 놓았는데, 가장자리를 따라 불꽃 무늬를 표현해 거신광(擧身光)으로 삼았다. 동일한 양식으로 조성된 듯한 좌우의 보살상은 각각의 머리에 작은 불상과 정병이 새겨진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쓰고 목걸이와 팔찌 등의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다. 법의는 기다란 U 자형을 그리면서 흘러내린다. 이들 보살상은 길쭉한 몸매에 어울리는 신체 비례와 목·허리·다리 세 부분을 비틀고 있는 모습 등으로 볼 때 새롭게 수용된 당나라 양식을 보여 준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석굴사원은 암벽에 마애불을 새기고 그 위에 목조 전실(前室)을 세우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삼국시대 조각이 통일신라로 옮겨 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으로 문화사적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자연 암벽을 뚫고 그 속에 불상을 안치한 본격적인 석굴사원이라는 점에서 불교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