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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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表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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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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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설명)
생몰년 미상. 신라시대 화엄종의 저술인 『화엄경문의요결문답(華嚴經文義要決問答)』에 책을 지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어 그 존재 여부 및 활동 연대를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황룡사(皇龍寺) 승려라는 점만이 확인된다. 저술에서 인용된 혜원(慧苑)의 『속화엄약소간정기(續華嚴略疏刊定記)』가 743년에 이미 일본에 유통되는 상황, 751년에 필사를 위해 쇼소인(正倉院) 문서에 기록된 사실 등을 통해 볼 때 743년 이전에 저술되어 751년 이전에 일본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히에이산(比叡山) 엔랴쿠지(延曆寺)에서 발견된 『화엄경문요의문답』필사본에 의하면 대략 700년에서 800년 사이로 활동 시기를 확정할 수 있으며, 책에서 인용된 문헌들의 연대를 고려해 볼 때 대체로 당나라 징관의 활동 이전에 활약한 인물로 추론할 수 있다. 『화엄경문요의문답』에 의하면 표원(表員)의 사상 및 특징은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비(非) 의상(義湘) 계열의 화엄종 승려라는 점이다. 당시 신라 불교계는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온 승려 집단이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고 대표적인 인물이 의상으로, 그는 중국에서 수입한 화엄 사상에 정토 신앙을 결합하여 독창적인 화엄 사상을 주창·보급하였다. 하지만 동시대의 많은 승려와는 달리 표원은 의상의 화엄 사상에 크게 동조하지 않았고 오히려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음이 기록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둘째, 중국 논사(論事)에 정통한 승려임이 추측된다. 『화엄경문요의문답』에는 당시 신라에서 유행한 의상이나 원효(元曉)의 논설보다 중국 화엄종 논사들의 교설(敎說)이 주로 인용되어 등장한다. 화엄종 3대 종주이자 실질적으로 화엄의 교학을 체계화시킨 인물인 당나라 법장(法藏), 지론종 남도파의 승려인 혜원(慧遠)과 늠사(懍師) 등이 책에서 주로 인용되고 있는 인물인데, 이를 통해 저자인 표원이 화엄, 특히 중국의 화엄학에 정통하였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면서도 특정한 학파에 치우치지 않는 포괄적인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 표원의 주된 학문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각종 문헌에 나타난 기록을 종합해 볼 때, 『화엄경문의요결문답』5권이 그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중 4권만이 현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