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서암
본문
한자1
[鶴棲庵]
한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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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설명)
1) 경기도 김포시 운양산에 있던 사찰이다. 2)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있는 사찰, 정혜사에 속한 암자로 1918년 만공(滿空)이 창건했다. 3) 전라남도 완도군 생일도 백운산에 1719년(숙종 45) 천관사(天冠寺)의 승려 화식(和湜)이 창건한 사찰이다. 백운산은 산의 기운으로 간혹 수액의 변고나 쟁사의 화가 있어 원한이 거듭 일어난다고 하여 이런 여러 액과 화를 제거하고 인명을 구제하기 위해 암자를 세우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산의 지형이 학과 같아 암자 이름을 학서암으로 짓게 되었다고 한다. 1734년(영조 10) 화식의 상좌승인 각명(覺明)이 중창하였다. 1754년(영조 30)에 삼창, 1800년(정조 24)에 신란법사(神鸞法師)가 사중창을 한다. 네 번째 중창할 당시 신란법사의 지인인 강위빈이 암자를 찾았는데, 토대와 건물이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기초가 무너져 내리고 서까래와 들보가 썩어가며 동서 건물들이 기울어 훼손된 것을 보고 걱정했다고 한다. 이에 신란법사는 가선대부 강세윤, 지광운, 금치오, 김상옥 등과 함께 중창하였다. 짧은 시간 안에 무려 4차례나 중창을 했다는 것은 암자가 위치한 곳의 비바람이 모질었다는 뜻이 담겨 있으며, 또한 섬에 중창할 만한 여력이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이후 1899년(광무 3)에 유사 이승태가 중심이 되어 다시 중창하였다. 1939년에도 다시 중창을 진행하였는데 당시 글에는 “현금 개와(기와로 지붕을 임)도 파물되어 누추하고 양금불상도 탈금이 되고 종도 파종되고 후불탱, 칠성탱, 산신탱, 지장탱, 신중탱 등은 전무하다.”라고 하여 중창의 필요성을 적고 있다. 중창에 필요한 비용이 상당하고 일제강점기임에도 가능했던 것은, 당시 사찰의 상태와 지역민의 학서암에 대한 정서를 보여준다. 이를 바로잡고자 신축 및 수리를 위한 준비금을 미리 잡아 보면, 모두 760여 원이 든다고 계산한 뒤 이를 걷기 위한 글을 썼다. 그 글이 바로 경고문이었다. 이런 노력으로 일제강점기 말의 어려운 사정이었지만 불전에 기도하면 액을 없애고 복을 얻게 하여 창건한 이후부터 섬 주민들에게 액이나 화가 매우 줄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재도 종교와 관계없이 사찰에 보수가 필요할 때는 전 주민이 직접 노동력을 제공하는 등 보수에 참여하고 있다. 4)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금곡동 황학산에 있는 사찰로 용담사에 소속된 암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