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
본문
한자1
[海圓]
한자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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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설명)
(1262~1330) 고려시대 승려. 속성은 조(趙)씨이며, 전라북도 완산(完山; 현재의 전주시) 출신으로, 호는 원명(圓明)이다. 원나라에서 활동한 유가학승(瑜伽學僧)이다. 12세에 금산사(金山寺)의 석굉법사(釋宏法師)를 은사로 득도(得度)하고 그에게서 경론을 배웠다. 1294년(충렬왕 20) 오교대선(五敎大選)에 응시하여 상상과(上上科)에 합격하였고, 곧이어 불주사(佛住寺)에 머물렀다. 1305년 원나라 안서왕(安西王)은 그의 계행이 매우 높다는 말을 듣고 사자를 보내 초청하였다. 당시 원나라의 풍속은 목축으로 생업을 삼았기 때문에 가축의 고기를 먹고 그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다녔다. 그러나 그는 중국에 머무르는 동안 굶주릴지언정 절대로 육식에 손대지 않고 계율을 철저히 지켰다. 이에 안서왕은 그를 더욱 중히 여기고 봄과 가을의 시순(時巡: 왕의 행차) 때에는 직접 어가의 호종(扈從: 왕을 모시고 따름)을 부탁하였다. 1311년 원나라 무제(武帝)의 원찰(願刹)인 숭은복원사(崇恩福元寺)가 창건되었을 때 인종(仁宗)은 그를 제1대 주지로 임명하였으며, 이후 원나라 황실의 지극한 예우를 받았다. 1328년(충숙왕 15) 충숙왕이 원제(元帝)에게 그를 김제 금산사로 보내주기를 청하는 글을 보내고 중대광우세군(重大匡祐世君)으로 봉했으며, 동시에 혜감원명변조무애국일대사(慧鑑圓明遍照無礙國一大師)의 존호로 모셨다. 마음가짐이 관대하고 온화하였으며, 몸가짐은 위엄이 있어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특히 유식학(唯識學)의 대의에 통달하여 많은 사람과 논쟁하였으나 그때마다 사람들을 조복(調伏)시켰다. 또한 사람을 접대할 때는 비천함과 존귀함을 차별하지 않고 한마음으로 대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의 아래에 모여들었다. 제자들에게는 항상 백성의 힘으로 이룩된 도량에서 사치와 음식을 탐하는 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면 미친 짓이라고 경책하였다고 한다. 1330년 2월 28일 원나라의 숭은복원사에서 세수 79세로 입적하였다. 제자로는 현인(玄印) 등 30여 명이 있어 숭은복원사에 탑과 비석을 세워 그의 도행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