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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론절요

본문

한자1
[華嚴論節要]
한자2
뜻(설명)
수서본(手書本). 3권 1책. 고려 후기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의 저술로 발행 사항은 미상이다. 지눌이 당나라 이통현(李通玄, 635∼730)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이하 『신론』) 120권을 분석 정리하여 중요한 부분만을 발췌해서 편찬한 책이다. 일본 가나자와문고의 필사본을 저본으로 삼아 『대정신수대장경』 제36권에 수록된 이통현의 『신론』 및 김지견 교주본(1968)과 대조하여 『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 제4책에 수록하였다. 제3권 끝에 판각과 간행이 제자인 충담(沖湛, 생몰년 미상) 등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사실과 제1권과 제3권 끝에는 일본의 엔슈(圓種, 1254~1377)가 1295년에 필사본을 발견하여 표점, 교정했다는 사실이 적시되어 있다. 1207년 정월 8일(양력 2월 6일)에 쓴 지눌 자신의 서문에 따르면, 1185년 하가산(下柯山)에 은거하던 중 선종의 ‘즉심즉불(卽心卽佛)’이 진리임을 확신했으나, 당시 교가(敎家)로부터 그것은 사사무애(事事無礙)를 관하는 것만 못하다는 힐난을 받고 이에 대장경을 3년간 열람하다가 『화엄경』「여래출현품」의 ‘미진경권유(微塵經卷喩)’에 감격하였다. 그러나 범부의 초신(初信) 성취의 길에 대해서는 자세히 몰랐다. 그의 고민을 해결해 준 것은 『화엄경』에서 범부의 지위로 간주되는 십신위를 대표하는 각수(覺首)보살의 이름이 중생의 몸과 분별심이 본래 법계, 부동지불(不動智佛), 그리고 문수보살의 지혜와 같음을 함축한다고 해설한 이통현의 『신론』이었다. 본문은 이처럼 지눌에게 교와 선의 일치를 일깨워 준 『신론』의 내용을 요약하는데, 전 3권 가운데 권2의 중반부까지는 40권본 『신론』에서 이통현이 『화엄경』의 핵심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요간(料間) 7권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는 교판에 해당하는 의교분종(依敎分宗)과 의종교별(依宗敎別), 『화엄경』의 교리적 특징을 밝힌 교의차별(敎義差別), 『화엄경』 구성을 10처 10회로 보는 이통현 특유의 견해를 밝힌 회교시종(會敎始終) 등 10문이 정리되어 있다. 이후에는 『화엄경』의 주요 문장을 해설한 『신론』의 수문해석(隨文解釋)이 편의에 따라 요약되어 있고, 지눌 자신의 목소리는 네 차례에 걸쳐 “목우자왈(牧牛子曰)”의 형태로 나타나 있다. 이 책에서 지눌은 이통현이 제시한 주요한 교학 이론들을 대부분 수용하고 있다. 특히 그는 중생들은 부처의 지혜와 질적으로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자각될 만한 속성이 없어 스스로 지혜를 갖추고 있음을 모른 채 업을 일으켜 고통을 받다가 그 고통으로 발심하여 깨달음을 얻는다는 이통현의 이론을 강조한다. 이통현은 이러한 마음을 가진 중생의 속성을 “땅으로 인해 넘어진 자는 땅을 딛고 일어선다[因地而倒因地而起].”라는 비유로 표현하였는데, 지눌 역시 이 책과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에서 이 비유를 인용하였다. 아울러 그가 경문 해석을 둘러싼 이통현의 일부 오류를 지적하면서도 그것을 최초의 필사자인 광초(廣超, 생몰년 미상)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지눌은 이통현이 공관(空觀) 및 선정을 비판한 근거인 일진법계(一眞法界) 및 『화엄경』의 교리를 문수, 보현, 비로자나 간의 관계를 통해 설명한 삼성원융(三聖圓融) 개념은 수용하면서도 중국의 고유한 철학 체계인 『주역(周易)』과 음양오행설을 통해 그 구체적인 내용을 해설한 『신론』의 문장들은 대부분 삭제해 버린다. 또한 『신론』에서 『화엄경』「세주묘엄품」에 나타난 신중(神衆)들과 수행 계위를 관련시켜 자세히 설명한 부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아가 지눌은 이통현이 『화엄경』 「입법계품」에 등장하는 여성 선지식을 자비의 화신으로 동일시하면서 비구승이 자비심의 결여를 나타낸다고 본 부분도 인용하지 않는데, 이러한 사례는 그가 『신론』에 나타난 것과 같은 중국적, 또는 통속적 상징 체계를 통한 『화엄경』 해석을 수용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말미에는 이통현의 전기인 「조화엄경론주이장자행장(造華嚴經論主李長者行狀)」이 부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