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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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時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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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설명)
법명 설잠(雪岑, 1435~1493). 본관 강릉(江陵),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청한자(淸寒子)·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 등이 있다.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서울 성균관 부근에 있던 사저(私邸)에서 부친 김일성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신동·신재(神才)로 이름이 높았다. 3세 때 보리를 맷돌에 가는 것을 보고 “비는 아니 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 누른 구름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無雨雷聲何處動 黃雲片片四方分].”라는 시를 읊었다 하며, 5세 때 세종의 부름을 받고 <삼각산시三角山詩>를 지었다. 15세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고 외가에 몸을 의탁했으나, 3년이 채 못 되어 외숙모도 별세하여 다시 상경했을 때는 아버지도 중병을 앓고 있었다. 이러한 가정적 역경 속에서 훈련원 도정(都正) 남효례(南孝禮)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나 그의 앞길은 순탄하지 못하였다. 1455년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공부하던 중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선위(禪位)했다는 소식을 듣고 출가하였다. 북으로 안시향령(安市香嶺), 동으로 금강산과 오대산, 남으로 다도해(多島海)에 이르기까지 9년간 방랑하면서 『탕유관서록(宕遊關西錄)』, 『탕유관동록(宕遊關東錄)』, 『탕유호남록(宕遊湖南錄)』 등을 정리하여 그 후지(後志)를 썼다. 1463년 가을에 효령대군의 추천으로 세조의 불경언해사업(佛經諺解事業)에 참가하였다. 1465년(세조 11) 다시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金鰲山室)을 짓고 입산하였다. 1475년 폭천정사(瀑泉精舍)에서 『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를 지었으며, 1476년 『대화엄일승법계도주병서』를 지었다. 1481년 잠시 환속하였다가 1483년 다시 출가하였다. 1493년 3월에 충청도 홍산(鴻山) 무량사(無量寺)에서 입적하였다. 유불(儒佛)을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1782년(정조 6)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영월(寧越)의 육신사(六臣祠)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