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원
본문
한자1
[鹿苑]
한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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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설명)
1) 석존의 첫 설법지. ⇨ 녹야원. 2) 1947년 9월 15일 발간. 《녹원》은 1946년 5월 28일에 결성된 조선불교학생동맹(朝鮮佛敎學生同盟)의 기관지이다. 《녹원》 1집은 1947년 3월 1일 동맹에서 기관지 발간을 계획하여 9월 15일에 발행되었으며 2집은 1949년 7월 13일에 발행되었다. 1집의 발행소는 조선불교학생동맹이었고, 편집 겸 발행인은 그 동맹의 문화부장이었던 김창호(金昌浩)였다. 그러나 1948년 전후 동맹의 명칭이 조선불교학생회(朝鮮佛敎學生會)로 전환되면서 발행소는 조선불교학생회의 문화부로, 발행인은 이하우(李夏雨)로 바뀌었다. 《녹원》에는 불교 학생들의 학위논문, 시, 소설, 수필, 콩트 등과 동맹 및 학생회의 일지, 교계 소식 등이 실려 있다. 이뿐만 아니라 동맹의 선언, 강령, 규약, 간부진용, 졸업생들의 동향 등도 게재되고 있어 해방 직후 학생들의 동향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이 잡지에는 당시 불교 혁신 운동에 관련된 내용이 다수 기고되었는데, 이 내용은 교계 소식과 함께 당시 불교계의 제반 동향에 관한 귀중한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3) 1957년 2월 5일 창간. 《녹원》은 녹원사(鹿苑社)에서 1957년 2월 5일에 창간호를 펴낸 이후 5호까지 나온 불교 종합잡지이다. 《녹원》의 편집 겸 발행인은 정태혁(鄭泰爀)이었다. 이 잡지에 기고한 인물로는 권상로, 임석진, 김동화, 김태흡, 허영호, 조명기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정태혁은 《녹원》 창간사에서 1950년대 당시는 동양 정신과 서양 과학문명의 겸전(兼全), 즉 우리 고유문화 토대에서 덕성과 신앙적인 문화를 창조하여 동양의 문화를 발굴 보급할 때라고 강조했는데 이것이 바로 《녹원》의 창간 의도인 셈이다. 그러나 1950년 후반에 접어들면서 불교계 내부에서는 이른바 ‘정화(淨化)’라는 미명하에 비구·대처승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이 잡지의 간행에는 이러한 불교계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의도가 내재된 것으로 추측된다. ‘불교계가 종교분쟁에서 진일보하여 불교 진리를 보급하자’라고 강조한 간행사에서 그 성격을 파악해 볼 수 있다. 유의할 점은 ‘녹원’이란 잡지명이다. ‘녹원’이란 잡지명은 일찍이 1933년 8월경에 있었으며, 해방 직후 불교 학생들이 만든 잡지 중에도 《녹원》이란 이름이 있었다. 전자는 조명기(趙明基)와 박봉석(朴奉石)이 만든 잡지로서 창간호가 나왔다는 사실이 《금강저(金剛杵)》 21호의 <우리 뉴-스>에 전하며, 후자는 1946년 5월 28일에 결성된 조선불교학생동맹(朝鮮佛敎學生同盟)의 기관지로서 1947년 9월에 창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