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봉사지장시왕도
본문
한자1
[大邱 瑞鳳寺地藏十王圖]
한자2
ⓢ
ⓟ
ⓣ
뜻(설명)
보물. 크기 169.3cm×178.2cm.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 서봉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지장시왕도이다. 서봉사의 지장시왕도는 1741년(영조 17) 조성된 불화이다. 가로로 금이 많이 가서 일부 화면이 손상되고 안료가 박락되긴 했지만,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었고 화기가 완벽하게 남아 있어 조성 당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지장시왕도의 화기에는 1741년(건륭 6) 5월 유명회(幽冥會: 유명은 저승을 의미하고 유명회는 지장보살의 설법도를 가리킨다)를 조성해 남장사(南長寺) 무량수전에 봉안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 인해 원래 봉안되었던 곳이 남장사 무량수전이었으며, 당시에는 지장시왕도를 유명회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남장사에는 같은 시기 같은 화승들이 조성한 아미타회상도와 삼장보살도가 남아 있는데, 이 지장시왕도도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봉사 지장시왕도는 18세기에 직지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수화승 세관(世冠)이 1741년 삼옥(三玉), 월륜(月輪), 서징(瑞澄), 순간(舜侃), 손혜(尊惠), 우평(宇平), 응잠(應岑) 등과 함께 조성한 작품이다. 화면 중앙에 반가부좌를 한 지장보살을 크게 묘사하고 아래쪽 하단에는 지장보살의 협시인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배치하였다. 이들 지장삼존의 옆에는 양쪽으로 10명의 시왕을 그렸고 시왕의 뒤쪽으로는 판관, 녹사, 옥졸, 동자 등이 있는데, 화면의 가장 상단에는 육광보살을 작게 묘사하였다. 각 인물들 별로 화면을 구획하기 위해 녹색과 황색 구름을 활용하였다. 이러한 표현은 18세기 중반 지장시왕도의 전형적인 도상으로 보인다. 녹색과 적색의 색상이 주조를 이루며 인물들은 섬세한 필선으로 묘사했는데, 가늘게 곡선을 이루는 눈썹, 가늘고 작은 눈, 오목한 입 등 안정된 신체 표현은 세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불화는 세관의 대표작인 직지사 삼세불도(1744년)보다 이른 시기에 조성된 작품이다. 세관의 이름 앞에는 ‘용면산인(龍眠山人)’이라고 적혀 있고 그 뒤에는 작게 ‘청직지(請直指)’라는 문구가 있다. 세관은 자신이 주도하는 불화 작업에서 자신의 스승 성징(性澄)처럼 ‘용면(龍眠)’이란 용어를 사용했으며 다른 사찰의 불화를 제작할 때는 ‘청직지’란 문구를 써서 직지사 화승임을 강조하였다. ‘용면’은 원래 중국 북송 후기의 사대부 화가였으나 많은 불화를 남긴 이공린(李公麟)의 호(號)이다. 그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의 조선 후기에는 불화승(佛畫僧) 중 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용면이라고 칭하였다. 또한 용면은 ‘그림을 그린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불화승의 우두머리를 칭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했다. 대구 용연사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및복장유물 [大邱 龍淵寺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및腹藏遺物]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용연사길 260에 위치하며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유물은 복장후령통을 비롯하여 조성발원문, 복장 전적 등 조성 당시의 원형을 갖추고 있어 불교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조성발원문을 통해 1655년이라는 정확한 조성 시기, 봉안 사찰, 조성 주체, 제작자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에 17세기 불상 연구의 기준이 된다. 또한 1762년의 중수개금기(重修改金記)까지 포함하고 있어 불상의 중수개금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이 불상에서 보이는 외모, 장대한 신체비례, 강직한 선묘, 무릎 앞에 넓은 주걱 모양의 주름을 중심으로 좌우로 밀도 높게 새긴 세밀한 주름 등은 조각승 도우(道祐)의 독특한 기법으로 파악된다. 도우는 17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조각승으로 이 유물에서는 무염(無染)의 조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얼굴이나 옷 주름의 표현 등에서 자신만의 특징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이 작품을 통해 도우의 시기별 기법 변화와 더불어 17세기 시대적인 특징인 대중적인 평담미, 종교성의 흐름 속에서 그만의 독특한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