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
본문
한자1
[彌勒寺]
한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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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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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설명)
1) 서울특별시에 있던 사찰. 2) 황해도 개성 성안에 있던 사찰. 고려 936년(태조 19) 태조의 명으로 광흥사(廣興寺)·현성사(現聖寺)·내천왕사(內天王寺) 등과 함께 창건했고, 1262년(원종 3) 중건하였다. 3) 경기도 강화군 봉천산에 있던 사찰. 4)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에 있는 사찰. 현재 재단법인 선학원 소속의 사찰이다. 창건에 관한 문헌상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며, 신라 703년(성덕대왕 2)에 창건되었다는 설과 852년(문성왕 14)에 무염국사(無染國師)가 창건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1778년(정조 2) 선밀(禪密) 대화상이 중수했으며, 1942년에도 다시 중수가 있었다. 1948년 화재로 소실된 후 인법당만 있던 것을 2004년 중창하여 오늘의 모습에 이른다. 미륵사 오른쪽의 산 능선 너머에는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가 있는데, 그 부근에 석재가 산재되어 있어 원래 미륵사의 절터로 추정된다. 5)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에 있는 사찰. 현재 대한불교 조계혜능종 소속 사찰이다. 미륵사 옆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인 증평 미암리석조관음보살입상(曾坪彌巖里石造觀音菩薩立像)이 있다. 6)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용화산에 있던 사찰. 백제 무왕이 선화부인의 청으로 창건하였다. 절터에는 무왕의 어린 시절 이름인 서동(薯童)과 선화공주의 설화가 깃들어 있으며, 용화삼회설(龍華三會說)에 입각해서 세웠다고 전한다. 문화재로 국보인 석탑과 보물인 당간지주 등이 있다. 7)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덕룡산(德龍山)에 있는 사찰. 백제 544년(성왕 22) 화엄사의 창건주로 전해 내려오는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하여 사찰명을 창룡사(蒼龍寺)라고 지었다는 전승이 있지만, 문헌상의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 없다. 창건 이후의 연혁에 대해서도 문헌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8) 전라남도 무안군 성남산에 있는 사찰. 조선 1472년(성종 3) 혜운(慧雲)이 창건하였다. 이후의 연혁은 전하지 않고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폐사로 남아 있던 것을 1942년 이후 중창해서 오늘에 이른다. 9)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만덕산에 있는 사찰. 백제 위덕왕 때 지명(知命)이 세운 작은 암자였다고 한다. 10) 전라북도 금산군 복수면 지량리 천비산에 있는 사찰.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의 미륵사와 같은 사찰인 듯하다. 11) 전라남도 곡성군 천덕산에 있던 사찰. 12)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금정산에 있는 사찰. 금정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로, 가장 높은 곳에 독성각이 있다. 창건 시기에 관한 문헌상의 기록은 없으나,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678년 의상(義湘)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고, 의상보다 앞서 원효(元曉)가 창건하고 주석했다는 설도 있다. 원효가 이곳에 주석하면서 그의 주요 저술 중 하나인 『상생경종요(上生經宗要)』를 집필한 곳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또한 원효가 미륵사에서 호리병 5개를 구하여 왜구의 배 5만 척을 물리쳤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당시 왜의 첩자를 유인하기 위해 바위 구멍에 장군기를 꽂았다는 일화가 있는데, 그 바위 구멍이 현재도 독성각 옆에 남아 있다. 지금은 기도 도량으로 유명하다. 13) 평안북도 의주군 송산에 있던 사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