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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전

법운

본문

한자1
[法雲]
한자2
뜻(설명)
1) 신라 진흥왕의 출가 후 법호. 어려서 왕위에 올라 일심으로 불법을 신봉했다. 말년에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호를 법운, 자(字)를 법공(法空)이라 하였다. 왕비도 따라 비구니가 되어 영흥사에 있었다. 진흥왕 7년에 흥륜사를 짓고, 10년에는 양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불사리를 보내니 입학승(入學僧) 각덕(覺德)이 양나라에서 불법을 구하다가 사신과 함께 귀국하였다. 진흥왕 14년에 황룡사를 지었고, 26년에는 진(陳)나라가 사신 유사(劉思)와 승려 명관(明觀)을 보내 석씨경론 1,700여 권을 전했다. 27년 기원사·실제사를 창건했고, 33년 전망장졸(戰亡將卒)을 위해 팔관회(八關會)를 베풀었으며, 35년에는 황룡사 16척 불상을 조성하는 등 불법을 독실하게 믿었다. 2) (465~527) 중국 의홍의 양선 출신이며 속성은 주(周)씨이다. 7세에 승려가 되어 장엄사에 있었다. 승성·현취·보량의 제자였고, 영명 연간(483~493)에 도림사에서 승유의 강연을 듣고 명예가 점점 드러나 승민(僧旻)과 함께 칭송되었다. 497년(건무 4) 처음으로 묘음사에서 『법화경(法華經)』·『정명경(淨名經)』을 강의했다. 499년(영원 1)에 비릉군의 청으로 강석(講席)을 베풀었다. 503년(천감 2) 왕의 명으로 궁전에 출입했고 광택사 주지가 되어 승제(僧制)를 세우고, 천감 말년경에 법운사를 창건했다. 부남국(扶南國)에서 삼부경(三部經)을 번역했다. 525년(보통 6) 대승정(大僧正)이 되었고 이후 동태사(同泰寺)에서 천승회(千僧會)를 열어 여러 절의 지사(知事)·학자(學者)·명승(名僧)을 모아 『대열반경(大涅槃經)』을 강의했다. 대통 3년, 세수 63세에 입적했다. 승민(僧旻)·지장(智藏)과 함께 양대(梁代)의 3대 법사라 칭해지며, 광택사(光宅寺)에 있었으므로 광택(光宅)이라 일컫는다. 저서로는 『법화소』 8권이 있다. 3) (1088~1158) 중국의 장주 채운리 출신이며 속성은 재(才)씨, 자는 천서(天瑞), 무기자(無機子)라 칭한다. 5세에 자행(慈行)의 방공(彷空)을 스승으로 섬기고 다음 해에 『법화의기(法華義記)』 7권을 섭렵했다. 9세에 출가해 10세에 계를 수지했다. 그 뒤에 여러 곳으로 다니면서 도를 구하다가 통조(通照)로부터 천태학을 배우고, 천축사의 민(敏)법사에게 『화엄경(華嚴經)』을 배웠으며, 남병청변(南屛淸辯)의 법을 이었다. 1117년(정화 7)에 송강(松江)의 대각사에 있으면서 보윤대사(普潤大師)란 호를 받고 8년 동안 『법화경』·『금광명경(金光明經)』·『열반경』·『정명경』 등을 강의했다. 이후 어머니를 찾아갔다가 1145년(소흥 15)에 승려들의 청으로 절에 돌아와 연사회(蓮社會)를 열고 1천여 대중을 모아 『십륙관경(十六觀經)』을 강의하며 본성유심(本性唯心)의 불(佛)을 염(念)했다. 또 팔관재회(八關齋會)와 금광명회·법화회·대비회·원각회·금강회를 결성했다. 소흥 28년 세수 71세에 입적했다. 저서로는 『번역명의집(翻譯名義集)』·『금강경주(金剛經註)』·『심경소초주(心經䟽抄註)』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