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광사
본문
한자1
[普光寺]
한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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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설명)
1)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영장리 고령산에 있는 사찰. 894년(진성여왕 8) 도선국사가 창건, 1215년(고종 2) 원진국사 중창, 1388년(우왕 14) 무학왕사가 중창, 1667년(현종 8) 지간석력이 중수, 1901(광무 5년) 인파가 중수했다. 2)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삼각산에 있던 사찰. 3)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 있는 사찰로 1851년(철종 2) 이유원(李裕元)이 화담경화(華潭敬和, 1786~1848)를 위해 창건하고, 1894년(고종 31) 봉성(鳳城)이 중수하였다. 1950년 6·25전쟁 때 소실된 것을 학산(鶴山)이 중창했다. 4)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에 있는 사찰로 발굴된 유물로 보아 신라 때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연혁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절의 역사는 알 수 없다. 오랫동안 폐사로 남아 있던 것을 1946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중창하고 개칭하였다. 5)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사찰로 894년(진성여왕 8)에 어명에 의해서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 1215년(고종 2)에 원진(元眞)이 중창하고 법민(法敏)이 불보살상 5위(位)를 조성하여 법당에 봉안하였으며, 1388년(우왕 14)에 무학(無學)이 중창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1622년(광해군 4)에 설미(雪眉)와 덕인(德仁)이 법당과 승당(僧堂)을 복원하였다. 1631년(인조 9)에는 도원(道元)이 범종을 만들기 위하여 모연을 시작했는데 3년 동안 청동 80근을 모은 뒤 죽게 되자, 신관(信寬)이 그 뒤를 이어 1634년에 300근의 범종을 완성하였다. 1667년(현종 8)에 지간(智侃)과 석련(釋蓮)이 중수하였고, 1863년(철종 14)에는 쌍세전(雙世殿)과 나한전(羅漢殿)·큰방·수구암(守口庵)을 건립하고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과 시왕상(十王像)·석가여래삼존불·16나한상 등을 조성하였다. 1884년(고종 21)에는 관음전과 별당을 지었고, 1893년에는 산신각을 신축하였다. 그 뒤 1901년에 인파(仁坡)가 상궁 천 씨(天氏)의 시주를 얻어 중수하였으며, 6·25전쟁 때 별당 등 일부 당우가 소실되어 1973년에 주지 와운(臥雲)이 중건하였다. 6)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양로에 있는 재단법인 선학원 소속 사찰이다. 1788년(정조 12) 금강산에서 수도한 원담이 신원사를 창건하였으나 6·25전쟁으로 인해 소실되고 일부 건물만이 남아 있던 것을 1979년에 정일(正日)이 주석하며 불사를 하여 1980년 보광사로 개칭하였다. 7) 충청북도 괴산군 사리면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에 소속된 사찰이다. 창건에 관한 자료는 없지만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조선 초기에 세운 것으로 보이며, 17~18세기에는 승려가 100명이 넘는 큰 절이었으나 고종(재위: 1863~1907) 연간에 폐사되었다. 1925년 봉주(鳳柱)가 초암을 지었고 1936년에 김봉삼(金奉三)이 석불을 모시면서 중창하였다. 8)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가신리 성주산에 있던 사찰. 고려시대 원명국사가 있던 곳이며 부여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보물)가 있다. 9) 충청남도 대흥군 백월산에 있던 사찰. 10)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고달산에 있던 사찰. 백제시대 창건, 고려 때 고룡봉(高龍鳳)이 중수, 조선 때 모악산에 옮겨 지었다. 11) 전라북도 정읍군 상두산에 있던 사찰. ⇨ 상두사. 12) 전라남도 나주군 금성산에 있던 사찰. 신라 선덕여왕 때 이곳에서 안신이 극락세계에 갔다고 전한다. 13)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에 있는 사찰이다. 구산이 광양 백운산 상백운암 토굴에서 주석할 때 광양읍 내 여러 신도들의 꿈에 백운산 산신령이 나타나, “백운산에 큰 도인이 계신데 왜 시봉을 하지 않느냐?” 하는 내용의 꿈을 꾸었다. 신기해한 동네 사람들이 수소문한 결과 백운산에 스님이 정진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십시일반으로 보시하여, 공양물을 지게로 상백운암 구산의 토굴까지 운반해 광양불교가 시작되었다. 구산이 방장으로 있을 때, 광양의 불자들이 쉽게 기도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하여 여러 대중 스님의 원력으로 민가를 구입하고 조계총림 광양포교당 보광사를 만들었다. 14)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에 있는 사찰로 1905년 거사(居士) 김기춘이 창건하여 수행처로 삼았던 곳이다. 1942년 김기춘의 아들인 도광(導光)과 도천(道川)이 중창하고 선방(禪房)을 열어 많은 선승(禪僧)을 배출하였다. 특히 도광의 제자 100여 명 가운데 화엄문도의 중진들을 이곳에서 배출하면서 화엄문도의 산실이 되었다. 도광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백용성(白龍城)의 상좌인 동헌의 제자로 화엄사(華嚴寺) 주지를 지냈다. 사찰의 대웅전(大雄殿)과 일주문(一柱門)은 각각 경기도 안양시 용화사와 여주시 신륵사의 것을 해체·이전하여 복원하였다. 15)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에 있는 사찰로 1924년 모진택이 처음 집을 짓고 별당으로 사용한 것에서 유래한다. 1938년 무렵 용천사(龍泉寺)의 신도에 의해 포교당으로 설립되었다가 1942년에 모성월(毛性月, 1886~1979)이 원명(圓明)과 김남하(金南夏) 포교사 등과 함께 인수, 지금의 보광사로 만들면서 본격적 사찰로 경영되었다. 16) 대전광역시 서구 도마동에 있는 한국불교 법륜종 소속의 사찰이다. 17) 경상남도 거창군 수도산에 있던 사찰. 18)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에 있는 사찰로 건립 경위는 명확하지 않다. 조선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昭憲王后) 청송 심 씨의 조상묘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했다는 설이 있지만, 그와 별개로 672년(문무왕 12) 의상대사가 건립했다는 설도 전한다. 또한 조선 세종 때 소헌왕후 조상묘가 보광사 근처의 산에 있다고 하여 원당으로 삼고 재실인 추모재(追慕齋)와 만세루(萬歲樓)를 건립했다고 하지만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 보광사라는 사찰 이름은 18세기 중엽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나오는데, 『여지도서』에는 “보광사는 관아의 남쪽 5리에 있으며 심홍부(沈弘孚)의 무덤을 수호하는 사찰”이라고 하여 청송심문의 원당 사찰임을 밝히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영남일기(嶺南日記)』(1708년)에는 보광사에 대한 기록이 나오지 않지만, 보광사 극락전 보수 공사 중에 발견된 상량문에는 1615년(광해군 7년)에 건축되었다는 내용이 있어, 보광사는 적어도 16세기경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극락전과 마주하고 있는 청송 만세루는 1428년(세종 10) 청송부사 하담(河澹)이 세우고 1856년(철종 7)에 자손들이 중수하였으며, 1958년에 재차 중수하여 22대손인 심상각(沈相恪)이 상량문을 지은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이다. 만세루는 세종의 비 소헌왕후의 친가인 청송 심씨 시조 심홍부의 묘재각(墓齋閣)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만세루는 청송 심씨 문중과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광사는 청송 심씨 문중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음을 알 수 있다. 19) 강원도 속초시 동명동에 있는 사찰로 1937년에 창건하였다. 부처님의 제자 53불 중 수제자인 보광불존(普光佛尊)을 모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20) 강원도 춘성군 하면 덕두원리에 있는 사찰. 1931년 재학이 안화사 터에 창건했다. 21) 평안북도 선천군 보리산에 있던 사찰. 22) 평안북도 철산군 운암산 웅골성 남쪽에 있던 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