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유지
본문
한자1
[菩提流支]
한자2
ⓢ
Bodhiruci
ⓟ
ⓣ
뜻(설명)
불교사에서 보리유지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중국 남북조시대 북조의 북위(北魏, 386~534)에서 6세기에 활약했고, 또 한 사람은 8세기에 당나라에서 활약하였다. 1) 보리유지(菩提留支)·보리골로지(菩提鶻露支)라고도 쓰며, 도희(道希)·각희(覺希)라 번역한다. 북인도 출신 승려로 경·율·논 삼장에 정통(精通)했다. 확실한 생몰연대는 미상으로, 508년(북위 영평 1) 중국에 와서 선무제의 명을 받고 영녕사(永寧寺)에 있으면서 700범승(梵僧)의 으뜸이 되어 경전 번역에 종사했다. 20여 년 동안 『십리경론』, 『입능가경』, 『유식이십론』, 『심밀해탈경(해심밀경)』, 『가야산정경』 등 39부 127권을 번역했다. 성품이 총명하여 위서(魏書)·예서(隸書)에 능통하며 또한 주술(呪術)에 능해 담무최(曇無最)와 교류했다. 담란(曇鸞)이 장생불사하는 법을 구하자 『관경(觀經)』을 주어 정토교를 홍통(弘通)하였다고 전해진다. 2) (572~727) 각애(覺愛)라 번역. 남인도 출신이다. 본명은 달마유지(達磨流支)로 바라문 종족이며 성은 가섭(迦葉)이다. 성품이 총명하여 12세에 외도(外道)에 출가해 바라사라(婆羅奢羅)에게 경술을 배웠다. 성명(聖明)·수론(數論)·음양·역수(曆數)·지리·천문·주술(呪術)·의방(醫方) 등에 능통했다. 60세에 야사구사 삼장(三藏)을 만나 불교에 귀의해 5년 동안 경·율·논 삼장을 배우고 이후 인도 전역을 유행하다가 693년(장수 2)에 당나라로 왔다. 측천무후의 명으로 이름을 달마유지에서 보리유지로 바꾸었다. 낙양 불수기사(佛授記寺)에서 『보우경』을 비롯해 『대보적경』, 『실상반야바라밀경(實相般若波羅蜜經)』 등 53부 백수십여 권을 번역했다. 이후에는 선관(禪觀)을 닦으면서 지송경행(持誦經行) 정진했다. 727년(개원 15) 11월에 낙양 장수사에서 입적에 들었다. 이때 나이는 세수 156세라 전해진다. 홍려대경(鴻臚大卿)이라는 관직을 추증(追贈)하고 개원일체변지삼장(開元一切遍知三藏)이라는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