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우
본문
한자1
[普愚]
한자2
ⓢ
ⓟ
ⓣ
뜻(설명)
(1301~1382) 고려 말기 승려. 호는 태고(太古), 첫 법명은 보허(普虛), 속성은 홍(洪)씨로 홍주(洪州; 현 충남 홍성) 출신이다. 13세에 양주 회암사 광지(廣智)를 찾아가 출가하여 가지산 하총림(下叢林)에서 수행했다. 26세에는 화엄선(華嚴選)에 합격한 뒤 선 수행에 천착했고, 이후 용문산 상원암·성서(城西)의 감로사에서 고행 정진했다. 1337년(충숙왕 복위 6) 송도(松都) 전단원(栴檀園)에서 무자 화두를 참구하다가 다음 해 정월에 크게 깨달았다. 삼각산 중흥사 동쪽에 태고암을 짓고 있으면서 태고를 호(號)로 하고 「태고암가」 1편을 지었다. 1347년(충목왕 2) 중국에 가서 호주(湖州) 하무산 석옥청공(石屋淸珙)에게 「태고암가」의 발문과 가사(袈裟)를 받아 법을 이어 동국(東國) 임제종의 초조(初祖)가 되었다. 1352년(공민왕 1) 궁중에서 설법하며 경룡사(敬龍寺)에 있었는데, 홍건적의 난을 피해 소설산으로 옮겼다. 1356년 왕의 청으로 봉은사(奉恩寺)에서 설법하였고, 그해 4월 왕사(王師)로 책봉되어 광명사(廣明寺)에 머물렀다. 광명사에 원융부(圓融府)를 두고 9산(九山)을 통합하여 일종(一宗)으로 만들려고 하였으나 이후 사퇴하고 소설암으로 옮겼다. 왕에게 신돈(辛旽)을 경계하는 글을 올리고 보광사(普光寺)에 가서 머물렀는데, 1368년 신돈의 참언(讒言)으로 속리산에 금고(禁錮)되었다. 이후 공민왕이 보우를 국사로 추대한 뒤 머물기를 청했으나 거절했다. 신돈 사후 우왕 때 국사가 되었다가 1382년(우왕 8) 12월 24일 소설암에서 입적했다. 세수 82세, 법랍 69세였다. 시호는 원증(圓證)이고 탑호는 보월승공(寶月昇空)이다. 탑비가 삼각산 태고사 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