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천사
본문
한자1
[寶泉寺]
한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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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설명)
1) 전라북도 군산시 서수면에 있는 사찰로 602년(무왕 2) 신라 승려 혜공(惠空)이 창건하였다고 하나 당시는 삼국이 대립하던 시기였던 만큼 신빙성이 적다. 1352년(공민왕 1) 혜근(惠勤)이 중창하였다는 설도 당시에 혜근이 원나라에 머물고 있었으므로 정확하지 않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추계유문(秋溪有文)이 중수하고 이 절에 머물렀다. 1924년 사세가 기울자 일본인이 법당을 사들인 뒤 법당을 뜯어서 일본으로 가져간 이후 폐사가 되었다. 일본인이 가져간 법당 건물은 지붕 용마루에 여러 장의 청기와가 얹혀 있어 아침 햇살이 비치면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폐사되면서 남아 있던 기구들은 숭림사(崇林寺)로 옮겨졌다. 1936년 백낙도(白洛道)가 옛 절터 옆 언덕에 새 절을 세우고 1971년 김무진(金武震)이 대웅전을 중수했다. 2)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에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 경덕왕 때 창건되었다. 보물로 지정된 보천사지삼층석탑이 있다. 보천암이라고도 불렸다. 3)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에 있는 사찰로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절터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석조 여래좌상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그 무렵 창건되었으리라 추정된다. 고려 충렬왕(忠烈王, 재위 1274~1308)의 왕자 왕소군(王小君)이 이곳에서 요양할 때 보천(寶泉)이라는 샘에서 솟는 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 해서 보천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1618년(광해군 10) 발간된 경상도 선산도호부 읍지 『일선지(一善誌)』에 “보천탄 가에 보천사라는 절이 있었으니…”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보천탄이란 현재의 절 인근의 낙동강 여울이다. 오랫동안 폐사된 채 이름만 전해 내려오다가 옛 절터에 묻혀 있던 불상(선산 해평동 석조여래좌상, 보물)을 발견, 1959년 보호각을 마련하고 불상을 봉안하면서 재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