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불교사전

불교사전

분황사

본문

한자1
[芬皇寺]
한자2
뜻(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로에 있는 사찰로 634년(선덕여왕 3)에 창건되었다. 국보로 지정된 모전석탑(模磚石塔)을 비롯하여 화쟁국사비 비석대(和諍國師碑 碑石臺)·석정(石井)·석조(石槽)·초석(礎石)·석등·대석(臺石)과 사경(寺境) 이외에 당간지주(幢竿支柱)가 남아 있다. 이 절에는 775년(경덕왕 14) 본피부(本彼部)의 강고내미(强古乃未)가 구리 30만 6,700근을 들여 만들었다는 약사여래 동상이 있었다는 언급이 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원효(元曉)가 이곳에서 『화엄경소(華嚴經疏)』를 저술하였고,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은 신화(神畵)로 일컬어졌다. 또한 절의 좌전에 있었던 천수대비(千手大悲) 벽화는 매우 영험이 있어서 눈먼 여자아이가 노래를 지어 빌었더니 눈을 뜨게 되었다고 전한다. 고려 숙종 때 원효에게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명종 때 화쟁국사비를 분황사에 건립하였다. 현재 비신은 멸실되고 비부만 잔존한다. 일제강점기에 분황사 석탑을 수리하면서 2층 탑신 내부에서 발견된 사리함 속의 출토 유물 가운데 상평오수(常平五銖), 숭녕중보(崇寧重寶) 등 발행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중국 주화가 나왔다. 숭녕 연간(1102~1106)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 분황사 석탑을 수리했음을 알 수 있다. 1998년 보광전을 수리 공사할 때 해체한 종도리에서 확인된 상량문(上梁文)에 따르면 분황사가 지금처럼 사역이 축소된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로 여겨진다. 1608년(광해군 원년) 보광전(普光殿) 등의 전각을 중창하고, 5,360근의 청동으로 약사여래를 주조·봉안하였다. 1680년(숙종 6)에는 허물어져 가던 보광전을 중수하였으며, 상량문은 이때 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