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본문
한자1
[佛敎]
한자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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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설명)
1) 석가모니불이 설한 교법뿐 아니라 초기 불교 이후 분파한 모든 교리와 종파의 총칭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법(法)이므로 불교를 불법(佛法)이라 하며 혹은 깨달은 자, 즉 부처가 되는 길이라는 의미에서 불도(佛道)라 부르기도 한다. 불교의 교조인 석가모니가 35세에 보리수 아래에서 진리(dharma)를 깨달아 붓다(Buddha: 깨달음을 얻은 이)가 된 이후 80세에 열반에 들 때까지 여러 국가를 유행하며 수많은 사람을 고통 속에서 구제하고 모든 이들의 깨달음을 얻게 할 목적으로 말한 교설이다. 석가모니불 당시 인도 여러 나라에 교법을 전파하여 교세(敎勢)가 점점 퍼져 나갔으며, 석가모니불의 열반 이후 불교는 초기불교, 부파불교, 남방 및 대승불교 등의 시기를 통해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 남아시아 및 티베트, 몽골 등 중앙아시아를 거쳐,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까지 확산하였다. 최근에는 유럽과 미국 등 서양의 여러 나라에서 발전하고 있으며 기독교, 이슬람교와 더불어 세계 3대 종교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는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에 중국 진(秦)나라에서 불교를 도입하고 수용하여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는 국가적으로 장려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숭유억불의 수난기를 거쳐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고려 및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승이 배출되어 한국불교만의 특색을 갖추게 되었다. 종교적 측면뿐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연구할 가치가 높아 동·서양의 수많은 학자가 철학, 심리학 등의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 교리로는 대승·소승으로 구별되고, 전파된 지방으로 남방불교 또는 북방불교로 구별하기도 한다. 2) 1924년 7월 15일 창간. 《불교》는 재단법인 조선불교 중앙교무원에서 경영했던 불교사(佛敎社)에서 매월 1회의 간행을 원칙으로 펴낸 불교 종합잡지이다. 1924년 7월 15일에 창간호가 나왔으며, 1933년 7월 1일의 108호로 휴간되었다. 이 잡지의 발행소는 불교사(경성부 수송동 44번지)였으며, 편집 겸 발행의 책임은 권상로(權相老, 1~83호)와 한용운(韓龍雲, 84·85합호~108호)이 담당하였다. 《불교》의 창간은 1920년대 중반 불교계의 동향과 연결해서 살펴볼 수 있다. 1922년 12월경 재단법인 조선불교 중앙교무원이 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출범했으나 당시 불교계에는 일제의 사찰 정책을 수용하지 않으면서 불교 발전을 독자적으로 추진했던 총무원이 있었다. 교무원과 총무원은 일제 사찰 정책 수용으로 대변되는 현실 인식의 문제로 인해 상호 갈등을 빚고 있었고, 총무원과 교무원이 타협하여 당시 불교계의 대표기관으로 등장한 것은 1924년 4월경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 《불교》였다. 《불교》는 원래 권상로가 중심이 되어서 불교의 홍보와 교리적인 해설을 위해 창간한 잡지였다. 그러나 권상로는 83호까지만 발간했고, 휴간된 것을 1931년 한용운이 인수해서 속간한다. 1933년 당시 불교 종합종단이었던 선교양종중앙교무원으로 운영권이 넘어갔으나 재정난을 이유로 폐간되었고, 1937년 해인사·통도사·범어사 3본산 종무협의회에서 재정을 지원받아 다시 속간하게 된다. 3) 1947년 1월 창간. 《불교》는 해방 직후 교단인 중앙총무원에서 기관지로 펴낸 잡지로 1947년 1월에 창간되어 동년 7월과 1948년 1·4·8월에 각기 간행되었다. 이 잡지의 편집 겸 발행은 장도환(張道煥)이 담당하였으며 발행소는 불교사(佛敎社)였다. 이 잡지는 일제강점기 재단법인 중앙교무원 및 조선불교조계종에서 간행한 《불교》와는 명칭이 같으나 간행 주체 및 내용은 다르다. 이 잡지는 해방 직후 불교계의 혁신을 위하여 교단에서 펴낸 《신생(新生)》을 계승하였다. 즉, 1946년 11월의 제2회 중앙교무회에서 ‘신생’을 ‘불교’로 변경한 것으로, 《신생》의 성격이 고스란히 《불교》의 특성으로 이전되어 교단 기관지의 성격을 더욱 분명히 하였다. 시사(時事), 평론(評論), 수필(隨筆), 교계소식(敎界消息), 통신강좌(通信講座) 등을 위주로 편집하였으며 당시 불교계의 현실 인식 및 동향을 보여주는 다수의 자료가 전해진다. 해방 직후 불교계에서는 불교 혁신의 대상 및 실천을 둘러싸고 갈등이 적지 않았다. 당시 혁신 단체에서는 교단을 부정하고 나아가서는 교단의 집행부를 친일파 및 반혁신 세력이라고 칭하면서 독자적인 혁신운동을 가속화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