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불국사 대웅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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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州佛國寺大雄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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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설명)
보물. 소재지는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385(진현동)이다. 경주 불국사는 신라의 동악(東岳)인 토함산(土含山) 서측 기슭에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불국사에 대한 문헌은 『삼국유사(三國遺事)』와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 『대웅전중창단확기(大雄殿重創丹雘記)』 등으로 『삼국유사』에 “김대성이 경덕왕 10년(751, 辛卯) 처음으로 불국사를 창건하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 甲寅) 12월 2일 대성이 죽자 나라에서 공사를 마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로 미루어 경덕왕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불국사고금창기』에는 528년(법흥왕 15)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삼국유사』에서는 영제부인迎帝夫人이라고 하고,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연제부인延帝夫人이라고 한다)의 소원으로 처음 불국사를 지었고, 574년 진흥왕의 어머니 지소부인이 크게 개창했다고 나온다. 670년(문무왕 10) 무설전을 지어 『화엄경』을 강의했고 751년(경덕왕 10) 김대성이 크게 중수하면서 청운교, 백운교, 석가탑, 다보탑 등을 건설했다는 것이 『불국사고금창기』의 기록이다. 대웅전은 석가여래를 본존으로 모신 건물로 불국토를 이루려는 염원을 담은 중심 전각이다. 현존하는 불국사 대웅전은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터전 위에 1765년(영조 41) 천룡사(天龍寺) 승려 채원(采遠)이 중창한 것으로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기단과 초석 등은 신라 경덕왕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불국사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으로 동서가 약간 긴 장방형의 평면이며, 단층 팔작 기와지붕의 조선 후기 다포계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어간(御間)에는 3구의 공간포가 배치되었고, 협간과 퇴간에는 1구의 공간포로 되어 있다. 살미첨차에는 초화문양(草花文樣)과 봉황(鳳凰) 머리를 조각했는데, 이는 조선 후기 불전 건축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평방에서 돌출된 용머리 조각 등을 매우 화려하게 장식했고, 천장은 우물형 층단식으로 중앙이 높게 꾸며졌다. 기단은 탱주(撐柱)와 우주(隅柱) 및 면석을 별석으로 만들지 않고 하나의 돌에 면석과 우주, 혹은 면석과 탱주를 설치해서 상부에 갑석(甲石)을 덮은 전형적인 남북국시대의 가구식 기단[架構基壇]이다. 가구식 기단이란 지대석, 탱주석, 우주석, 면석, 갑석 등을 목가구를 짜듯 정교하게 구성한 기단을 말한다. 대웅전 전면에는 동측의 다보탑과 서측의 석가탑이 배치되어 있으며, 팔각을 기본으로 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등이 있다. 또한 불국사 대웅전은 좌우 익랑(翼廊)을 갖추고 있어서 각기 동서 회랑으로 연결되는데, 남회랑의 동측 모서리에는 좌경루(左經樓)가 있고 서측 모서리에는 범영루(泛影樓)가 있다. 남측으로 청운교와 백운교의 석계와 이어지는 자하문은 대웅전으로 출입하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불국사고금창기』에 의하면, 대웅전은 1436년(세종 18) 중수했고 1490년(성종 21)과 1564년(명종 19)에도 중수가 있었으나,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그 후 다시 1659년(효종 10) 중창하였고, 1677년(숙종 3) 번와 보수, 1708년(숙종 34) 서쪽 기둥 교체, 1730년대(영조 5~7)에 개와(蓋瓦) 보수가 있었다. 1765년(영조 41) 대웅전을 중창하고, 1767년 단청이 완료되었으며, 1769년(영조 45)에는 대웅전의 삼존불과 후불탱(後佛幀)을 완성하였다. 이후 불국사 대웅전은 심하게 퇴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일제강점기인 1918년부터 1925년까지 조선총독부 주관으로 개수한 바 있다. 이어 1934년부터 1936년 사이에도 개수가 있었다. 또 다시 지나치게 퇴락되던 것을 대통령의 지시로 1970년대에 중창하였다. 불국사 대웅전은 창건 당시의 석조물인 기단과 석등 등, 그리고 1765년(영조 41)의 중창 기록과 단청 기록이 함께 보존되어 있는 매우 중요한 건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