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수국사목조아미타여래좌상및복장유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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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國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및腹藏遺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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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설명)
서울특별시 은평구 서오릉로 23길 수국사에 있으며 보물로 지정되었다. 수국사는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懿敬世子)가 20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덕종’으로 추존하고 넋을 위로하고자 1459년(세조 5) 그의 묘[후에 경릉(敬陵)으로 추존] 근처에 지은 왕실 원찰(願刹)이다. 창건 당시 명칭은 정인사(正因寺)였으나, 1471년(성종 2) 소혜왕후가 중창한 이후 수국사(守國寺)로 개명하였으며, 조선시대 동안 서오릉(西五陵: 창릉·경릉·명릉·익릉·홍릉)을 관리하고 왕실의 안녕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사찰로 기능하였다. 수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제작 연대가 적힌 발원문이 없어 정확한 조성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중후한 얼굴과 건장한 형태미 그리고 이중으로 입은 착의법과 자연스러우면서 특징 있는 옷 주름 등에서 13세기에서 14세기 전반기에 조성된 불상들과 양식적 특징이 유사하다. 즉, 힘과 중후함이 느껴지는 얼굴과 신체는 물론 왼쪽 어깨에서 짧고 촘촘하게 흘러내린 주림이 좁은 겹 오메가(Ω)형의 주름을 형성하고 있는 점, 금구 장식 없이 간결하게 처리된 승각기의 표현 등은 서산 개심사 아미타여래좌상(1280년 중수), 서울 개운사아미타여래좌상(1274년경), 나주 심향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 등 13세기 중·후반경의 불상들과 비교된다. 특히 이 불상에서 느껴지는 중량감 넘치는 건장한 남성적인 형태미는 고려 후기 귀족풍의 단정하고 아담한 형태미를 추구했던 하나의 조류와는 또 다른 불교 조각의 흐름과 미의식을 알려 주고 있어 그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