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본문
한자1
[釋迦牟尼]
한자2
ⓢ
Śākyamuni,
ⓟ
Sakyamuni
ⓣ
뜻(설명)
불교의 교조(敎祖). 석가는 종족의 이름이고, 모니는 성자라는 뜻으로 석가족의 성자를 말한다. 석가문니(釋迦文尼)·사가야모니(奢迦夜牟尼)·석가모낭(釋迦牟曩)·석가문(釋迦文) 등으로 음사하고, 능인(能仁·能忍)·능적(能寂)·적묵(寂默)·능만(能滿)·도옥초(度沃焦) 등으로 한역한다.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석가여래(釋迦如來)·석가세존(釋迦世尊)·석가(釋迦)라고도 한다. 중인도 카필라성의 성주(城主)인 정반왕(淨飯王)과 마야부인(摩耶夫人) 사이에서 왕자로 태어났다. 당시 풍속에 따라 마야부인이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가던 중 룸비니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서 탄생했다. 바로 사방으로 일곱 걸음 걸으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외쳤다. 탄생한 지 7일만에 어머니 마야를 잃고, 이모인 파사파제(波闍波提)가 양육하였다. 어릴 때 이름은 교답마(喬答摩, Gotama) 혹은 실달다(悉達多, Siddhārtha)였고, 점점 자라면서 과학과 문학의 대요(大要)와 베다(Veda, 吠陀)를 배웠으며, 무예(武藝)도 연마해 숙달하였다. 선각왕(善覺王, Suprabuddha)의 딸 야쇼다라(Yasodharā)를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 라훌라(Rāhula)를 낳았다. 29세(혹 19세)에 왕성의 4문으로 다니면서 노인·병든 이·죽은 이·수행자를 보고 출가할 뜻을 내어 어느 날 밤에 왕성을 넘어서 동방의 남마성(藍摩城) 밖 숲속에서 속복을 벗어 버리고 출가하였다. 남방으로 바이샬리(Vaiśālī), 마가다(Magadha) 등지를 다니며 발가바(Bhargava, 跋伽婆), 알라라 카라마(Alara kalama, 阿藍伽藍), 웃다카 라마풋다(Uddaka Ramaputta, 鬱陀羅) 등의 선인(仙人)을 만나 6년 동안 고행을 한다. 그러나 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크게 깨달아 부처가 되었다. 그때 나이는 35세였다. 이로부터 스스로 깨달은 교법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녹야원에 가서 안나콘단냐(Aññā-kondaññȧ, 阿若憍陳如), 밧디야(Bhaddhiya, 跋提), 바파(Vappa, 婆沙波), 마하나마(Mahanama, 摩訶男), 아사지(Assaji, 阿說示) 등 다섯 명의 수행자에게 최초의 가르침을 설하셨다. 이후 배화교도(拜火敎徒)였던 우루벨라카사파(Uruvelā-kassapa, 優樓頻羅迦葉), 나디카사파(Nadi- kassapa, 那提迦葉), 가야카사파(Gayā-kassapa, 伽耶迦葉) 등 가섭 3형제와 산자야(Sañjaya)의 제자였던 사리불(舍利弗, Śāriputta), 목건련(目犍連, Maggallana) 등을 제자로 삼았다. 깨달은 뒤 3년(혹 6년)에 카필라(Kapila)에 돌아가서 부왕을 뵙고 친족을 제도하는 한편 여러 나라로 다니면서 빔비사라(Bimbisāra), 아자타샤트루(Ajātaśatru), 파세나디(Pasenadi) 등을 교화하여 불교에 귀의시켰다. 북방의 쿠시나가라(Kuśinagara) 밖 발제하(跋提河, Ajitavati) 언덕 사라쌍수 아래 누워 최후의 가르침을 주신 다음 열반에 드셨으니 세수 80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