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두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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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頭希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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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설명)
(700~790) 당나라 때 승려. 속성은 진(陳)씨. 단주(端州) 고요(高要) 사람으로 석두종(石頭宗)을 개창했다. 유년 시절에 이미 출가에 뜻을 두어 마을 사람들이 복을 기리기 위해 동물을 죽여 희생제를 올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712년(선천 원년), 육조혜능이 고향 신주(新州)로 돌아와 국은사(國恩寺)를 다시 세웠는데 이때 희천은 육조 문하로 출가하기로 결심하고 나이 열네 살에 사미가 되었다. 그러나 혜능은 다음 해에 입적했다. 723년(개원 16)에는 나부산(羅浮山)에서 구족계를 받고 계율을 공부했다. 승조(僧肇)가 쓴 『열반무명론(涅槃無名論)』을 읽고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도리를 깨친 후에는 여릉(廬陵)에 있는 청량산(淸凉山)에서 육조 혜능의 제자 청원행사(靑原行思)에게 청문하여 선법을 전해 받았다. 천보 연간(742~755)에 남악 형산(衡山)에 있는 남대사(南臺寺) 동쪽 큰 바위 위에 초막을 짓고 지냈는데 이때부터 사람들이 그를 석두화상(石頭和尙)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 이름이 알려져 홍주도일(洪州道一)과 나란히 했다. 790년(정원 2) 12월 25일에 입멸하니 세수 91세, 법랍 63세였다. 천황도오(天皇道悟), 조주태전(潮州太顚), 약산유엄(藥山惟儼) 같은 이름난 제자를 두었고, 희천의 재전 제자들은 조동종(曹洞宗), 법안종(法眼宗), 운문종(雲門宗)을 개창했다. 저서로는 『삼동계(參同契)』와 『초암가(草庵歌)』가 있다. 시호는 무제대사(無際大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