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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본문

한자1
[松廣寺]
한자2
뜻(설명)
1)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있는 사찰로 한국의 삼보사찰 중 승보사찰(僧寶寺刹)로 유서가 깊다.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은 조계산의 옛 이름인 송광산에서 유래한다. 『송광사지(松廣寺誌)』에 따르면 신라 말기에 혜린(慧璘)이 마땅한 절을 찾던 중 이곳에 이르러 산 이름을 송광이라고 하고 절 이름을 길상(吉祥)이라고 했는데, 사찰의 규모는 불과 100여 칸에 지나지 않았고 승려도 30~40명을 넘지 못하였다. 1125년(인종 3) 석조(釋照)가 대찰을 세울 뜻을 품은 채 입적하자 1197년(명종 27) 수우(守愚)가 사우(寺宇) 건설을 시작하였다. 3년 후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정혜사(定慧社)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선사(修禪社)라고 하고 도(道)와 선(禪)을 닦기 시작하면서 대찰로 중건하였다. 조계산은 이때까지 송광산이라 불렸는데 보조국사 이후 조계종의 중흥도량(中興道場)이 되면서부터 조계산이라고 고쳐 불렸다. 조계종은 신라 때부터 내려오던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총칭으로 1097년(숙종 2)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일으킨 천태종(天台宗)과 구별하여 부르기도 했다. 이후 보조국사의 법맥을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이어받아 송광사를 중창한 때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 동안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면서 승보사찰의 지위를 굳혔다. 경내에는 16국사의 진영(眞影)을 봉안한 국사전(國師殿)이 별도로 있다. 수선사를 언제 송광사로 개칭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임진왜란 때 일부가 소실된 뒤 한동안 폐사 상태였는데, 후에 응선(應禪)을 비롯한 승려들이 복원하고 부휴(浮休)를 모셔 다시 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1842년(헌종 8) 큰 화재로 전소되었는데, 삼존불(三尊佛)·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금기(金器)·대종(大鐘) 및 기타 보물과 『화엄경(華嚴經)』 장판(藏板) 약간만 건졌다. 1922년부터 1928년까지 설월(雪月)·율암(栗庵)이 중수하고, 1943년부터 1956년에 승려와 신도의 노력으로 차례로 복원하여 옛 모습을 되찾았다. 1948년의 여수·순천사건과 6·25전쟁으로 사찰의 중심부가 불탔는데, 그 후 취봉(翠峰)·금당(錦堂)이 대웅전과 전각을 복구했다. 1983년부터 1990년까지 대웅전을 비롯해 30여 동의 전각과 건물을 신축하고 중수하여 오늘과 같은 승보종찰의 모습을 갖추었다. 2)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에 있는 사찰이다. 신라 경문왕(景文王) 때 도의선사가 세웠다고 한다. 당시 이름은 백련사(白蓮寺)였는데, 규모가 매우 커서 일주문이 3km나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황폐해져 폐찰이 되었다가 1622년(광해군 14)부터 응호·운쟁·덕림·득정·홍신 등이 재건을 시작해 14년 만인 1636년(인조 14) 완공되었다는 기록이 송광사사적비(松廣寺史蹟碑)에 기록되어 있다. 이때부터 송광사라 불리었는데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의 승보사찰 송광사와 한자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