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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도서 / 한국불교전서

한국불교전서 권1 - 신라시대 1편

저자 한국불교전서편찬위원회 편
출판년월 1998-03-25
ISBN ISBN-10 : 8978011608 ISBN-13 : 9798978011609
판형 B5
페이지수 846쪽
판매가 8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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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1, 머리말

    한국불교의 장구한 역사의 과정 속에서 주옥과 같은 선조들의 전적이 수없이 많았다. 고승대덕들의 수행과 원력의 결정체인 전적들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散逸되거나 마멸되어 그 진수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이러한 점을 걱정한 선배들의 노력으로 『韓國佛敎全書』 12권이 편찬되었고 이어서 13권과 14권도 출간을 서두르고 있다. 오늘날 많은 불교학자들은 『新修大藏經』이나 『高麗大藏經』을 인용하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불교에 관해서는 『韓國佛敎全書』를 활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전서가 출간된 후 한번도 학술적인 장에서 평가가 없었다. 이를 아쉬워하던 중 이를 애석하게 여겨서 필자는 한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그러나 본 전서에 전력하던 고익진 교수께서 유명을 달리하므로 그 동안 여러 가지 얽힌 이야기들을 알 수 없어서 아쉽다. 만약 고교수가 생존했더라면 자료를 수집하고 해독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들이 많았을 것으로 알지만, 가신 분을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정리를 하여 둔다면 후배들의 연구에 귀감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둘째는 본 전서에 수록 된 자료를 시대별로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저자의 간단한 행적과 전적의 내용을 소개하므로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여긴다. 이자료는 출판부에서 나온 것을 중심으로 하고자 한다. 

    셋째는 본 전서의 자료적 가치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본서의 특징과, 희귀본 등의 자료적 가치 및 평가를 하고 한다. 

    마지막으로 향후의 과제로는 補遺板, 私記類, 諺解本, 國譯, 英譯 등의 필요성과 지속적인 사업으로 전산화의 과제에 대하여 언급코자 한다. 

     

    Ⅱ, 한국불교전서의 편찬과정

     

    1, 편찬배경 

    우리 나라에 불교가 전래된지 1600여년이 지나면서 많은 고승대덕은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으므로 중요한 문화유산들은 전화의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여기에는 수많은 유형무형의 문화유산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선조들의 사상을 담은 典籍의 散逸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는 없어지고 목록만 남은 것도 많이 있으며, 목록조차도 알 수 없는 전적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나마 국내나 국외로 유출되어 그 존재만이라도 알고 있는 것이 적지 않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불교전적목록의 작성은 중국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하여 大藏經의 목차를 만들고 經律論을 모아서 대장경을 편찬하기에 이르렀다. 

    현존하고 있는 최고 목록으로는 梁나라(445-518) 僧祐에 의해 511년경에 편찬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出三藏記集』15권이 있다.(각주1) 그 이후로는 隋代인 594년에 法經 撰한 『衆經目錄』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에는 初雕大藏經을 간행하였고, 또 義天大覺國師는 대장경의 목록을 정리하여 續藏經을 편찬하였다. 그런데 의천의 노력 이후 불교전적의 정리는 되지 못하다가보니 중요한 문헌들이 散逸, 파손되고 말았다. 이러한 점을 염려하여 수차에 걸쳐서 시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일제치하에서 뜻 있는 불교학자들에 總書간행을 추진하였던 적도 있었다. 이들은 李能和를 회장으로 추대하여 "朝鮮佛書刊行會"를 조직하고, 총서간행을 기획하였다.(각주3) 그 일환으로 1925년에 鄭晃震, 李能和의 공동으로 『朝鮮佛敎刊行豫定書目錄』을 간행하였으나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말았다. 

    한편 일본에서는 1912년에서 1922년까지 11년 간 총 140권에 달하는 『大日本佛敎全書』를 간행하였다. 그들은 정부의 지원 하에 국가적인 사업으로 이루어진 작업이었기 때문에 방대한 분량의 저술들을 짧은 시간 내에 수집할 수 있었으며, 출판비 등 경제적인 문제도 크게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 자극을 받은 한국불교학계에서는 수차에 걸쳐서 추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이러한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목록의 파악이 시급하며, 이를 분류하고 정리하여 해제를 붙여야 하며, 각판본을 비교하여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희귀본을 수집하는 일과 개인 소장가들에 의해 깊이 감추어진 자료들을 세상에 내어놓도록 설득하는 작업도 쉬운 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는 산실되었으나 해외에 있는 자료들의 수집과 파악도 중요한 일 중 하나이다. 그리고 필사본으로 된 것으로 草書의 해독은 불교한문의 대가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편으로 이와 같은 불사는 인력에 못지 않게 경제적인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작업의 성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며,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과 아낌없는 경제적인 지원이 요망되는 불사이므로 어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귀중한 자료는 분실될 우려가 높으며, 한글세대의 젊은 불교학자들로서는 필사본인 경우 초서로 된 한자의 해독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국내학자들에게 있어서도 한국불교학을 연구하려고 하여도 기본적으로 정리된 자료가 없이는 활발한 연구가 불가능하며, 이러한 점은 해외학자들에게 있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현재까지 불교학연구의 기본자료로 널리 사용되는 것으로는 일본에서 간행된 『大正新修大藏經』과 『高麗大藏經』이 중심이다. 그러므로 한국불교학을 선양시키고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체계적인 자료의 제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과거에는 귀중한 자료는 몇몇 소장가들에 의해서 단순히 소장만 되었을 뿐 학문적인 연구성과가 나오지 못하였다. 그들 중 일부는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것을 자랑만 하였지 공개하지 않으므로 인하여 연구에 전혀 진척을 보지 못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고승 중에 개인적인 전집류를 내기도 하였으나 자료가 체계적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신빙성마저도 의심이 갈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 불교계의 현실을 볼 때 이러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 기관은 동국대학교가 가장 적임자였다. 한국불교자료집을 발간한다는 것은 단순히 불교계만을 위한 작업이 아니라 한국학연구에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당시의 『불교신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한국불교 학술자료 파손과 유실을 막고 散逸된 자료의 체계적 정리를 통해 불교학은 물론 역사, 문화, 철학분야에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라고 평하고 있다.(각주4) 이와 같이 불교전서의 편찬은 한국의 정신사를 연구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문학, 한국철학, 학국사학, 한국문화를 비롯하여 한국인의 정신세계에는 불교와 관련이 없는 것이 없다. 그런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기관으로는 본교가 적임임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따라서 본교는 이러한 불사에 앞장서지 않을 수 없었으며, 다행히 역대 총장 중에 불교나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사업이다. 

     

    2, 자료수집

     

    이러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한국불교학계에서는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하였다. 필자는 이 작업의 시작을 1925년 朝鮮佛書刊行會에서 만든 總書目錄부터 라고 생각되지만, 그 다음 단계로 이루어진 것이 東國大學校 白性郁 총장이 착수한 高麗大藏經 영인작업이라고 본다. 고려대장경의 가치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논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정된 판 이외는 구해볼 수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다가 본교에서는 이를 영인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단기 4290년(서기 1959년) 9월 12일에 백성욱 총장은 고려대장경 영인본 1권으로 『大般若波羅蜜多經』을 발간하였다. 이 작업은 백성욱 총장의 원력으로 순조롭게 진척되다가 1962년 4월 19일 4,19로 인하여 교내의 사정은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이 작업도 중단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백성욱 총장은 13권으로 『首楞嚴經』을 발간하고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다시 복간하기를 1975년 李瑄根 총장의 주도 하에 동년 10월 15일에 14권으로 『大智度論』이 출간되었다. 이선근 총장은 본교의 개교 7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고려대장경 영인본 완간의 원력을 세우고, 1976년 5월 8일 본교의 개교70주년 기념식에 마지막 47권으로 『花嚴經探玄記』를 출간하였다. 그리고 1976년 6월 10일에는 『高麗大藏經 總目錄 解題 索引』집을 간행하므로 총 48권의 고려대장경 영인본을 내게되었다. 

    한편 불교대학을 중심으로 하여 佛敎文化硏究所의 몇몇 뜻 있는 교수들은 1970년 초부터 장차 한국불교전서의 원력을 세우고 자료수집에 들어갔다. 우선작업이 자료의 목록편찬에 있었으므로 한국불교찬술문헌의 총목록을 만들기 위하여 1925년도의 목록을 참고하여 자료를 분석하였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로 1976년 12월 1일에 佛敎文化硏究所에서 편찬한 『韓國佛敎撰述文獻總錄』이다.(각주5) 본서의 특색에 대하여 凡例에서 밝히기를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① 수록범위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기(1986)까지 한국에서 찬술된 불서와 한국불교에 관한 문헌자료를 광범한 자료에서 추구하여 현존본은 물론 산실본 까지 전부수록하였다. 

    ② 訂正追加는 종래의 목록이나 서지학 관계저술에서 잘못된 곳은 訂正하였으며, 상당수의 한국불서를 새로 발견하여 추가하였다. 

    ③ 배렬순으로는 찬술부와 자료부를 대별하고 가부는 다시 시대순, 저자별로 배렬함을 원칙으로 하였다. 단 이런 배렬이 不適할 경우에는 종류별로 하였다. 

    ④ 撰述部는 저자의 행장을 소개하고 그아래 그가 지은 모든 저술, 詩文 등을 列擧하여 題號, 卷數, 현존여부를 밝힌 다음 해제를 붙였다. 

    ⑤ 해제요령에서 해제는 문헌에 언급된 전거, 내용, 현존본 및 소장처의 三項으로 나누어 가능한 이를 갖추어 서술하였다. 

    ⑥ 資料部는 紙面관계상 書目을 들고 그 存失, 소재 등을 언급하는 것으로 그쳤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 해제를 베푼 곳도 있다. 

    ⑦ 부호는 해제 말미의 <>는 참고문헌을 가리키고 ㉶은 소장처를 가르킨다. 

    ⑧ 색인은 권말에 인명과 서명색인을 附載하였으며, 목차 또한 자세하게 만들어 일종의 시대, 저자별 색인이 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찬술부 현존본에 대해서는 ㉠註解部(般若類, 法華經類, 華嚴經類, 寶積經類, 經集類, 律典類, 論書類) ㉡宗義部(三論宗, 天台宗, 華嚴宗, 淨土宗, 禪宗) ㉢文集部 ㉣史傳部(記傳類, 靈驗類, 寺誌類) ㉤禮懺部의 다섯 부류로 갈라 이에 대한 색인을 만들어 붙였다. 

    ⑨ 참고문헌은 1975년(원고 완성 시) 이후에 발간된 문헌목록들은 참고하지 못하였다. 

    ⑩ 집필부분에서 집필자 및 담당부분은 다음과 같다. 

    金煐泰 撰述部 삼국신라시대, 조선시대 

    資料部 전기편, 사지편, 기타잡부(文類, 詩抄類) 

    高翊晋 撰述部 고려시대, 正音撰述 及 譯解 

    資料部 기타잡부(의식관계문헌, 眞言類 音譯本) 

     

    라고 한다.(각주6)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헌 총록은 서지학적인 측면에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특히 책의 해제에 속하는 설명은 간단하지만, 초보자들에게는 알기 쉽게 정리되었으며, 저자에 대한 시대와 행장의 소개는 초심자들에게는 유용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또한 각판본의 소장처와 증거자료는 알기 쉽게 밝혀두고 있다. 이러한 편찬은 직접 확인하고 분석한 결과로 나올 수 있는 성과물이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며, 자료를 분석할 수 있는 학문적인 탁월한 능력과 지혜가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이 작업에는 한국불교학계의 석학인 김영태, 고익진 교수의 헌신적인 노력과 열정 및 안목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목록집은 일본불교학계에도 큰 관심을 가지게 하여 일본어로 번역되므로 한국불교학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집을 제공하게 되었다. 본서가 기본바탕이 되어 『韓國佛敎全書』를 간행하게 되었다. 

     

    3, 편찬과정

     

    한국불교학계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한국불교전서의 편찬 사업은 철저한 자료수집과정을 거치면서 총목록을 만들게 되었다. 이를 기본으로 하여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1896)까지의 한국인에 의해서 편찬되고, 저술된 자료를 총망라할 것을 발원하였다. 처음에는 10권을 출간할 목적으로 시작하여 1979년 1월 25일에 그 첫 권을 세상에 내어놓았다. 당시에 많은 교수들이 참여하였는데, 학교에서는 조직으로 「東國大學校 佛典刊行委員會」를 두고 그 중에 한 분야로서 「韓國佛敎全書 編纂委員」을 구성하였으며 다음과 같다. 

     

    동국대학교 불전간행위원회 

    위원장 鄭在覺, 

    부원장 黃壽永, 

    위원 洪庭植, 李載昌, 李箕永, 安啓賢, 金雲學, 李智冠, 金翰周, 朴敬勛, 申貞均, 

    간사 睦楨培, 權奇悰 

     

    한국불교전서 편찬위원 

    위원 洪庭植, 李箕永, 金煐泰, 金鎬鎭, 朴敬勛 

    간사 高翊晋 

     

    으로 구성되었다.(각주7) 많은 학자들의 참여와 노력이 있었지만, 불교문화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불교대학의 교수들의 동참에 힘입어 김영태 고익진 교수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실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조직체계를 세워 1979년부터 1980년 5월까지 신라시대편 3권을 출간하였다. 그러나 고려시대편에서는 판손과 마멸이 심한 원고정리와 빈약한 자료수집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특히 조직상의 문제로 인하여 지원이 원활하지 못하므로 1981년부터는 체제를 개선하였다. 지금까지는 불교문화연구소에서 맡아오던 업무를 대학의 모든 출판을 담당하는 대학출판부로 이관하였으며, 대학출판부내에 韓國佛敎全書編纂室을 설치하여 독립시켰다. 따라서 漢籍을 판독할 수 있는 전문가를 영입하여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하였다. 여기에 이 업무에만 전염할 수 있도록 전담반을 구성하였는데, 편찬실장으로는 고익진 교수가 맡았으며, 현명곤, 김두재, 이정희씨 등을 초빙하여 실무를 맡게 하였다. 이와 동시에 기존의 불전간행위원회를 韓國佛敎全書編纂委員會로 흡수 통합하고 당시의 이지관 正覺院 원장을 위원장으로 추대하여 1982년부터 1984년까지 高麗時代편 3권을 출간하였다. 

    1986년에는 실무진에 박경준 연구원을 보강하여 조선시대편 4권이 완성되므로 1989년 11월 25일에 제10권까지를 완간 하였다.(각주8) 당시의 편찬위원회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위원장 李智冠 

    위원 洪庭植, 李箕永, 李載昌, 金煐泰, 朴敬勛, 高翊晋 

    편찬실 玄明崑, 李貞熙, 金斗再, 朴京俊 

     

    등이다.(각주9) 이러한 과정 속에서 1988년 음력 9월 6일에는 이 작업에 몰두하던 고익진 교수가 과로로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고 마는 애석한 일도 있었다. 편찬과정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일은 완간을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고익진 교수와 출판비가 모자랄 때에는 이지관 총장이 개인 사비를 내어놓는 일 등이었다고 한다.(각주10) 

    그런데 10권의 완간을 마무리하기는 하였으나 여러 가지로 미비한 점이 많았다. 특히 미쳐 자료를 수집하지 못하여 수록에 빠진 것이나 자료간행 이후 더 신빙성 있는 자료가 출현하여 부득이 새롭게 실어야 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11권과 12권은 補遺編으로 출간하였다. 1992년 6월 25일에 간행된 11권은 고익진 교수의 타계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새롭게 위원회를 구성하여 출발하였는데 여기에는 釋宗眞, 李哲敎, 金敏榮 등의 지원팀이 보강되었다.(각주11) 그리고 4년 뒤인 1994년 1월 25일에는 12권이 발간되었다. 당시의 구성원으로는 다음과 같다. 

     

    동국대학교 불교전서편찬위원회 

    위원장 李智冠 

    위원 洪庭植, 李箕永, 李載昌, 金煐泰, 蔡澤洙, 吳亨根, 睦楨培, 朴敬勛, 金仁德, 李永子, 權奇 悰, 徐閏吉 

    편찬실 玄明崑, 李貞熙 

     

    등으로 이루어졌다.(각주12) 따라서 전 12권을 완간 하는데, 1970년 『韓國佛敎撰述文獻總錄』을 기획하던 시기부터 계산한다면, 약 26년간 걸린 대작업이었으며 비용은 약 12억 정도가 소요되었다. 1979년 1권을 발간하면서부터 12권의 발간인 1996년까지는 무려 17년 간 출판을 하였다. 圓測(613-696)의 『佛說般若波羅蜜多心經贊』 1권부터 시작하여 구한말 송광사 도총섭을 지낸 寶鼎(1861-1930)의 『念佛要門科解』 1권에 이르기까지 총 180여명이 남긴 322종의 문헌이다.

  • 목차
    『韓國佛敎全書』 1권(1979)에는 圓測(613-696), 神昉, 元曉(617-686)의 저술이 중심이다. 圓測의 『般若心經贊』은 현장역 『般若心經』의 최초의 주석서로서 원측과 窺基의 교학적 차이를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또 원측의 『解深密經疏』 10권은 유식학의 소의경전인 『해심밀경』에 대한 유일한 주석서이다. 그런데 8권의 권두 일부와 제10권 전부가 缺落된 상태로 전해져 왔다. 다행히 서장의 法成에 의해 서장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일본의 稻葉正
  •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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