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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레걸 사상계를 읽다-1950년대 문화의 자유와 통제

저자 권보드래 외 지음
출판년월 2009-04-20
ISBN
판형
페이지수 신국판 양장본
판매가 4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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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1950년대에도 ‘된장녀’가 있었다

     

    ‘자유’를 누리려던 여성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은 군대 주둔과 경제 원조를 통해 우리 사회에 ‘풍요의 나라’로 비치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미국이 전파하려 했던 자유와 민주주의는 미국의 대중문화와 함께 분방한 문화적 이미지로 변질된 채 수입되었다. 여전히 유교적 관습에 얽매여 있던 한국 여성들에게 전쟁 이후 들이닥친 ‘자유’와 ‘민주주의’는 엄청난 유혹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전통이라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미국의 문물을 소비하고 ‘댄스’와 같은 미국식 문화를 향유함으로써 ‘자유’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여성들이 등장하면서 한국 사회는 ‘아프레 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그녀들을 경멸적으로 지칭하기에 이른다.

    전후戰後를 뜻하는 프랑스어 아프레 겔(après guerre)에 소녀(girl)를 합성한 이 독특한 조어는 향락, 사치, 퇴폐의 다른 이름이었다. 아프레걸은 주로 “분방하고 일체의 도덕적인 관념에 구애되지 않고 구속받기를 잊어버린 여성들”을 가리키며 성적 방종이라는 의미와 함께 쓰였다. 그러나 ‘아프레걸’로 불리던 여성들은 그 편향된 명명법의 의도와는 달리 ‘자유’를 갈망하던 사회적 약자로 봐야 한다. ‘아프레걸’들의 일탈은 쾌락과 욕망을 위한 값싼 방종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으려는 과감한 모험이었던 것이다. 

     

    ‘된장녀’는 사회적 요구에 의해 파생된 존재

    2009년 현재, ‘된장녀’라는 기괴한 이름이 아직도 말소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50여 년 전의 편향된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스타일』의 소설가 백영옥은 자신의 산문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에서 “아! 이건 뭔가 잘못된 것이다. 5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면 천하의 재수덩어리가 되고, 50만 원짜리 술을 마시면 대단한 호쾌남이 되는 이 비논리를 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라며 오늘의 현실을 개탄한 바 있다.

    만약 ‘된장녀’가 실재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의해 파생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외모가 곧 경쟁력이 되는 사회에서 겉치장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매너와 센스가 없는 ‘촌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성형중독이나 사치로 인한 파산은 전적으로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귀결된다. 이러한 폭력적인 모순 속에서 여성은 쉽게 낙인찍혀 버리는 반면, 같은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남성들은 웬만해서는 지목되지 않는다. 이 책의 대표 필진인 권보드래 교수는 50여 년 전에도 있었던 유사한 상황을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여성이 댄스나 계나 자모회 같은 영역에 진출하게 된 것은 사회적 요구가 작용하고 있었으되, 그 (폐단의) 책임은 오롯이 여성에게 돌려졌다. (……) 이런 과정 속에서 자유부인의 자유는 방종과 타락으로 귀결되는 자유, 그러면서도 ‘아프레걸’ 같은 실존적 장치마저 거치지 못한 자유로 단죄된다. 이 단죄의 절차 속에는 정치적 알레고리가 겹쳐 있기도 하다. (87~88쪽) 

     

    요컨대 ‘아프레걸’은 1950년대 문화의 자유와 통제를 이해하는 데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아프레걸과 사상계라는 두 개의 프리즘을 통과한 1950년대 

     

    복합적 시선으로 당대를 해부하다 

    이 책은, 이승만과 사상계와 아프레걸이 얽혀 있던 시절의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문화적 지층을 당대 자료와 담론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여 해석하고자 한 연구서이다. 1950년대를 해명하기는 쉽지 않다. 경제적으로는 원조에 의존하면서 전후 복구정책이 제대로 시동되지 못했고, 정치적으로는 정당, 자치단체, 시민영역을 불온시하고 억압하는 정책이 횡행했으며, 문화 일각에서는 전쟁의 충격이 반추되고 실존주의적 절망의 포즈가 유행했으나, 대중문화의 전반적 동향에서는 ‘향락’과 ‘사치’와 ‘무절제’가 지배적이었다. 문학의 절망적 포즈를 통해 1950년대를 이해하려는 시도들이 영화의 활력이나 여성성의 약진이라는 실재했던 현상 앞에서 무력해지기 십상이듯, 정치·경제·사회 등이 어우러진 복합적 시선은 당대를 온당히 해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프레 걸après girl이라는 독특한 조어 

    전후(戰後)라는 뜻의 프랑스어 아프레 겔après guerre과 소녀girl를 조합한 이 독특한 조어는 전후―실존주의―여성이라는 새로운 맥락을 암시하고 있으며, 동시에 전쟁의 참상과 전후의 향락·퇴폐를 증거하고 있다. ‘아프레걸’은 이 책의 저자들이 주목하는 1950년대의 한 표상이다. 이 ‘아프레걸’을 ‘사상계’라는 1950년대 최고의 지성지와 결합시킴으로써 쾌적한 혼란과 해체적 상상력을 기대했다. 또한 이 상상력에 간섭할수 있는 규범화된 젠더를 비판하려는 시도도 병행되었다. 1950년대는 이러한 담론을 거치면서 정치적으로 재맥락화되었으며, 이 문화와 정치의 관계를 거쳐 1950년대적 특성이 주조된다. 

     

    학제간 연구와 미디어 연구를 통한 문화연구적 시각 

    이 책은 문화의 동향에 주목하면서 역사학 쪽의 목소리를 함께 실었고, 시·소설 외에 연극·영화·악극·방송극 등 다양한 장르의 원고를 마련했으며 『사상계』『여원』등의 중요 잡지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매체연구를 통한 문화연구의 방법론은 물론, 여러 학문분야의 연구자들이 상호 연구에 관여하면서 학제간 연구의 성실한 사례를 보여주었다.

     

     책 속으로

    1950년대에 대한 여러 분야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대체로 1950년대 한국사회의 특수성은 정치적 폐쇄성(경직성), 경제적 낙후성(대외의존성), 문화적 역동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한국현대사에서 1950년대에 대한 위상 설정도 정체/변혁, 불인/회임으로 극단화되어 있다. 이 간극의 문제를 잠시 유보해두고 문화를 중심에 놓을 때, 정치적 폐쇄성과 졍제적 낙후성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활황을 보여주는 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1950년대 문화 이해의 관건이 된다. (13~14쪽) 

     

    성적 모험을 실천한다 해도 쾌락이라는 동기는 배제되어야만 했다. “왜 여자에겐 이런 경우라도 욕망이라는 것이 움직이지 않을까. 단지 나는 심심할 뿐이다.”라는 진술은 이 ‘차디찬 육체’의 상태를 잘 말해준다. “독을 뿜어내야지, 독을 쏟아 버려야지, 어쩔까, 일어서서 불을 켜고 담배를 피워 물까, ‘싸르트르’의 ‘마르셀’ 모양 발가벗은 몸뚱어리로 누워 있어 볼까?”라는 일탈이 허용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자극도 ‘아프레 걸’의 육체를 흥분시킬 수 없다는 전제가 짙게 번져 있었기 때문이다.(81쪽) 

     

    그렇지만, 이 작품이 근대화의 지향과 가치를 전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각별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 소설은 올바른 근대화의 지향이라는 정치적 발화를 전제하고 있으며 그것을 구현할 주체를 교양과 건강한 윤리의식을 지닌 ‘정상적인’ 남성(시민)으로 제시한다. 기존 연구는『자유부인』의 주제의식이 올바른 근대화의 체현자들인 이들 남성 지식인 정치 공동체와 지배계급(국가권력) 사이의 대립이라는 정치적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112쪽) 

     

    미국에 의한 것이든, 국가에 의한 것이든 1950년대는 자본주의적 기술 문화가 일상생활 영역에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일상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던 ‘자유(주의)’, ‘민주(주의)’, ‘시민’ 등의 말도 식민지 시기에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국가건설을 바탕으로 가능하게 된 놀랍고 새로운 말들이다. 새롭게 열려진 외부 세계에 대한 주체의 열망, 결국 이것이 1950년대 주체들이 가졌던 내적 동력이 아니었을까.(153쪽)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여성들을 가리키는 이들 전쟁미망인에게는 여러 부류의 여성들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전쟁 미망인에는 남편이 군인이나 경찰관, 청년단체원, 군속 등으로 참전하여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된 ‘군경미망인’, 민간인으로 전투행위와 무관하게 사망한 이들의 부인인 ‘일반미망인’, 좌익활동과 관련되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부인, 미군이나 군인, 경찰에 의해 학살당한 사람들의 부인 등이 포함된다.(224쪽) 

     

    『여원』은 현모양처를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제시하는 ‘계몽적 발화주체’를 근간으로 한다. 그리고 이런 여성대중에 대한 계몽의 태도는 시종일관 『여원』편집의 주된 지침이 된다. (……) 그런데, 그 와중에 『여원』의 여성담론에 비균질적인 다원적 목소리가 끼어드는 시기가 있고, 그 끼어드는 정도가 잡지의 성격을 좌우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던 시기가 있으며, 이 시기의 비균질적 담론양상에서 시민적 주체로서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발견된다.(257쪽) 

     

    이 점은, 양공주 인물형이 기생 인물형과는 다른 방식으로 관객의 호감을 끌어들이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즉 기생 인물형이 관객이 공감하고 연민하는 대상이라면, 양공주는 더럽고 불쾌하지만 그 현대성과 미국적 질감에 대한 부러움 때문에 바라보게 되는 인물형이다. 따라서 영화에서 기생과 달리 양공주는, 그 현대성과 미국적 질감이 실제 이상으로 과장되게 형상화되는 경향을 보인다.(317쪽)

  •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폐쇄된 개방, 허용된 일탈 - 1950년대 검열과 문화 지형


    제1부 지식인과 미국의 욕망
    실존, 자유부인, 프래그머티즘 - 1050년대의 두 가지 ‘자유’ 개념과 문화
    자유와 민주, 식민지 윤리감각의 재맥락화 - 정비석 소설을 통해 본 미국 헤게모니하 한국 문화재편의 젠더정치학
    신협의 교양 대중과 미국연극
    전후, 마리서사, 세계의 감각 - 청년 모더니스트 박인환을 중심으로

    제2부 대중문화와 젠더
  • 저자소개
    권보드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학교 교양교육원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지은 책으로 『한국 근대소설의 기원』(소명출판, 2004), 『연애의 시대: 1920년대 초반의 문화와 유행』(현실문화연구, 2003), 『1910년대, 풍문의 시대를 읽다』(동국대학교 출판부, 2008) 등이 있다.

    김옥란
    한양대학교와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시간강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