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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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경술국치 100주년, 일제 통치의 가혹한 탄압 밑에서
“멜랑콜릭하되 건강한” 조선의 소년을 만나다!
정관 김복진(井觀 金復鎭, 1901~1940)은 일제 식민통치 시기에 한국 근대미술의 토대를 이룩한 선구적인 미술작가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는 근대기 최초의 조소작가, 미술비평가, 문예운동가로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특히 그는 조소예술계에 정관파(井觀派)라고 일컬을 만한 다수의 제자들을 양성하면서 주류로서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의 안타까운 요절과 직계가족의 단절, 일제 말 공출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작품의 소실로 현존 작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그의 사회주의 활동 경력과 제자들의 월북 등으로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매우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1940년 5월, 제19회 조선미전 출품작 중에서 단연 눈에 띈 것은 <소년>이라는 제목의 조소(彫塑)작품이었다. <소년>은 특선에 이어 조선총독상을 수상했고, 작가 김복진은 추천작가의 칭호를 받았다. 그러나 김복진은 작가로서 최고의 영예를 얻었지만 3개월도 지나지 않아 만 39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는 <소년>에 대해 훗날 그의 동생인 팔봉 김기진은 “멜랑콜릭하되 사색적이며, 불안정한 듯하면서 사실적이며, 보수적인 듯하나 건강하고, 그리고 웅경(雄勁)하다.”라는 의미심장한 회고의 글을 남겼으나, 현재 도록에 실린 한 장의 흑백사진으로만 전할 뿐이다.
근대 조소예술의 기틀을 세운 김복진의 작품과 생애를 집대성하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미술평론가로서 김복진의 작품 발굴과 연구에 30여 년을 천착해 온 윤범모 교수(경원대)가 마침내 『김복진 연구 - 일제 강점하 조소예술과 문예운동』(동국대학교출판부 - 문화학술총서 시리즈)을 펴냈다.
올해 이순의 나이인 저자는 20대 때부터 “김복진 작품을 발굴하기 위해 청춘을 할애”하면서 추모전시회, 팔봉산 무덤 발굴과 묘비 건립, 《김복진전집》출판 등 추모사업을 이끌며, 김복진 작품과 생애 연구를 꾸준히 해왔다. 이 책은 스스로 ‘정관교(井觀敎) 신자’를 자처한 저자가 반평생의 열정으로 이룩한 우리 근대조소미술사의 정전이다.
김복진은 미술에 있어 전통과 진보라는 양극단을 섭렵하면서 창작의 지평을 넓혔다. <소년>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백화>는 그가 이러한 경계를 넘나든 대가풍(大家風)의 작가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1938년 조선미전과 일본 신문전에 각각 출품한 <백화>는 7등신의 늘씬한 몸매에 다소곳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한복차림의 젊은 여인 입상이다. 두 손을 앞으로 다소곳이 모아 정숙하면서도 내면적으로 강인한 느낌을 준다. 원래 ‘백화’는 소설가 박화성이 동아일보에 연재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장편소설 『백화』의 주인공을 일컫는다. 박화성은 김복진의 아내 허하백을 중매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백화>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와 논쟁에 대해서 저자는 당시 모델을 섰던 배우 한은진의 증언과 치밀한 도판 분석 등으로 그 실체적 진실에 다가선다.
김복진은 일반 조소작가와 달리 전통적 불상예술에도 일가를 이루어 근대기 불상조각의 모범을 선보인 불모(佛母)이기도 했다. 저자는 금산사의 <미륵전 본존상>과 예산 정혜사 <관음전 관음보살 좌상>이 김복진의 작품임을 밝혀낸 경위와 자료, 증언 등을 책에서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가 조성한 불상은 주로 미륵상으로 신라 불상의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여 근대성을 부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재료의 사용에 있어서 금산사의 소조에서부터 미완의 <법주사 미륵대불>의 시멘트에 이르기까지 재료의 다양화를 시도했다. 특히 이 책에서는 금산사 미륵불의 마케트(모형)에 해당하는 계룡산 소림원 소장의 <미륵불 입상>을 발굴∙확인하여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김복진은 카프(KAPF)의 실질적 지도자였다.”
근대 문예운동사 서술을 바꿀 정부 비밀문서의 발굴과 연구 최초 소개
김복진은 조소작가로서 일가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1920년대 진보적 문예운동사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수행한 예술가였다. 그는 동생인 김기진, 그리고 박영희 등과 함께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을 주도적으로 결성하였고, 실질적인 지도자 역할을 했다.
또한 그는 고려공산청년회 조직 책임을 맡아 최후의 남부군으로 알려진 이현상 등을 이끌며 일제하 광주학생운동사건과 같은 민족독립운동의 한 흐름을 형성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김복진은 1927년에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배제하고 조선의 독립을 도모”한 이유 등으로 무려 5년 6개월의 투옥생활을 했다. 훗날 저자를 비롯한 뜻있는 이들의 자료 발굴 노력에 힘입어 김복진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서는 드물게 1993년 8월 15일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追敍)받았다.
이 책의 부록으로 실린 <치안유지법 위반 신문조서>는 정부가 보관 중인 비밀문서 중에서 저자가 발굴한 것으로서, 학계에 최초로 공개되는 사료라 할 수 있다. 이 자료에는 고뇌하며 행동하는 청년예술가 김복진의 진면목과 함께 일제강점기 진보적 민족독립운동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들이 소개된다.
책 속으로
― 김복진은 조소작가로서 나체상으로부터 불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면서 조소예술 세계의 지평을 넓힌 선구적 작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존작 전무’에 해당하는 작가로 취급되어 본격적 조명을 받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이에 이 책에서는 몇 점의 작품을 발굴하여 새로 소개함은 물론 그의 조소예술 세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미술가로서의 김복진은 창작활동 이외에도 다수의 미술론과 비평문을 발표한 미술이론가 혹은 비평가이기도 했다. 그는 생전에 20여 편의 미술론과 비평을 발표했다. 이 글들은 당대 미술계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키곤 했다. 그는 예리한 평문과 이론으로 당대 미술계의 정점에서 지도자적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전문적 미술평론가가 부재했을 뿐 아니라 미술이론가 역시 희소했던 일제하에서 김복진의 글쓰기는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김복진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전통적 채묵화로부터 유화, 조소 심지어 공예 분야에 이르기까지 당대 작가의 작품에 대하여 언급 했다. 그가 다룬 당대의 작가 숫자만 해도 약 130명 정도에 이른다.
― 김복진의 조직활동은 토월회 같은 소집단 운동을 들 수 있지만 보다 본격적인 것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을 들 수 있다. 무산자 예술을 주장한 이 조직은 1920년대 중반의 획기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카프는 그동안 문학가 중심으로 기술되어 온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김복진의 역할에 대한 연구는 소홀한 편이었다. 하지만 사실상 카프의 조직이나 노선 정립 혹은 구체적 활동에 이르기까지 지도적 위치에 선 주인공은 바로 김복진이었다.
― “보보를 잃고 1주일 되던 날, 절에 가더니 승僧이 된다고 머리를 깎고 와서 하던 말이, ‘부모가 돌아가신데 따라 죽으면 효자라 하고, 남편을 따라서 (죽으면) 열녀라 하는데, 부모가 자식을 따르면 무어라고 할까’하고, 거의 발광하다시피 말하였더랍니다. 2주일 되던 날은 자기가 불상을 조성하던 청주 용화사에 다녀온다더니 자기 수첩에 붙여 품속에 다니던 보보 사진을 두고 왔다고 합니다. 49재까지 축원하여 달라고(……) 갖은 애를 다 써보았으나 아무 효과가 없이 8월 18일 오후 11시 경에, 보보를 잃고 난 지 바로 한 달 되던 날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이것이야말로 그 무슨 조화일고.”
― 김복진은 대지주 가문의 출신이었다. 이런 그가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는 입장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지배를 배격하는 투쟁을 벌였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이만큼 그는 본인의 좌우명처럼 역사와 함께 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학계나 문학계에서 김복진의 역사적 위상에 대한 평가는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때문에 사학계나 문학계뿐만 아니라 미술계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그에 대한 연구와 재조명 작업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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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장 서론 ❚ 8
제2장 일제하의 조소예술과 김복진 ❚ 18
1. 일제하의 조소예술과 작가 …… 24
2. 일본 조소예술의 전개 양상 …… 28
3. 도쿄미술학교와 조소 전공 조선인 학생 …… 32
4. 조선미전 조각부 출품의 조선인 작가 …… 50
5. 김복진 제자들의 활동과 조선미전 …… 54
6. 김복진의 조소 작품 내역 …… 64
제3장 일반 조소 작품과 조소론 ❚ 72
1. 김복진과 나부상裸婦像작품 …… -
저자소개
윤범모 尹凡牟
미술평론가.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하였다(문학박사). 뉴욕대학교 대학원 예술행정학과에서 수학하였고, 사우스플로리다 대학교 연구교수를 지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시와시학』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등단하였다.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회장, 동악미술사학회 회장, 한국미술품감정가협회 회장, 사단법인 불교문화산업기획단 이사,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경원대학교 미술디자인대학 교수이다.
주요 저서로